“이곳보다 더 끔찍한 병동은 없습니다. 마냥 뛰어 놀고 싶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흉한 상처를 온몸에 두르고 고통에 소리치는 모습을 보면 부모들의 가슴이 찢어집니다.” 한 어린이 화상병동을 방문한 어머니의 소감이다. 사실 어린이 화상을 목격한 어른들은 아이가 겪는 육체적인 아픔보다는 평생 남을지 모르는 흉터를 인정하고 살아야 할 아이의 미래 때문에 더욱 안타까워한다.
어린이 화상은 어디서 어떻게 주로 발생할까. 전문의들은 화상발생의 유형을 잘 숙지해 이를 피하는 지혜만 갖춰도 대부분의 ‘재앙’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화상발생의 패턴을 숙지해야
대한소아과학회가 21일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보고서 <5년간 소아 화상사고 및 원인에 대한 고찰>을 살펴보면 어린이 화상의 최근 유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연구논문은 한림대 의대 김광남 교수팀이 60개월 간 한강성심병원에 입원한 15세 이하의 화상 환자 2,613명의 화상 원인 및 유형을 조사한 결과를 담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환자 중 85.9%인 2,2101명이 집에서 화상을 입었다. 이들 중 무려 1,853명(71%)이 뜨거운 물로 데였고 러닝머신 등에 의한 접촉열화상(273명ㆍ10%)과 화염화상(212명ㆍ8%) 수증기화상(123명ㆍ5%) 등이 뒤를 이었다. ‘뜨거운 물’로 화상 원인이 분류된 경우는 국 라면 커피 등 구체적 유형이 다양하지만 연구팀은 최근 가정에 급속하게 보급되기 시작한 정수기를 새로운 주범으로 지목한다. 김 교수는 “정수기 온수 온도는 80도를 넘기 때문에 어린이 피부에 잠깐만 닿아도 물집이 생기는 2도 화상을 당할 수 있다” 며 “최근 정수기로 인한 어린이 화상이 3년 새 2배나 증가한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화상유형 중 두 번째로 빈도가 높은 접촉열화상의 경우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이 다리미이다. 특히 다림질 도중 잠시 세워놓은 다리미를 아이가 만지는 사례가 많다. 또 전기코드를 뽑아놓았더라도 다리미에는 잔열이 오래 남아 있는데 아이가 이를 모르고 접촉해 화상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팀은 2001년 접촉열화상의 원인 중 3.1%에 그쳤던 러닝머신이 2005년 20.5%까지 치솟은 점에 주시할 것을 강조한다. 김 교수는 “어른들의 웰빙문화로 보편화한 러닝머신은 다른 화상 원인물보다 어른들의 주의가 덜 가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며 “러닝머신 접촉에 의한 화상은 뜨거운 열과 물리적인 충격이 함께 오기 때문에 대부분 피부이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린이 화상치료 인프라가 부족
이 같은 화상의 유형을 잘 익혀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가장 좋지만 불의의 사고는 항상 있기 마련.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쉽게도 화상전문치료시설을 갖춘 병원이 몇몇에 정도에 불과하다. 정신적 충격이 큰 어린이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곳은 더더욱 부족하다. 지난해 열탕화상을 입어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4세 딸을 둔 정모씨는 “충남 모 병원에서 처음 진료를 받았는데 병세가 그다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통원치료만을 권유했다” 며 “이후 증세가 심해져 서울의 병원으로 아이를 옮겼는데 병원으로부터 그동안 병을 키웠다며 핀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화상치료는 성형ㆍ정형ㆍ정신과 등의 여러 전문의들이 팀을 이뤄 진행을 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의로 구성된 의료진을 운영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이유로 전문 클리닉이 거의 없는 것이다. 한강성심병원 관계자는 “사실 화상전문병원은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남는 게 없는 비즈니스” 라며 “이런 이유로 장비와 전문요양시설을 확충하지 못하는 종합병원이 많다”고 털어놓는다.
화상은 최근 들어 건강보험급여 범위가 확대돼 그나마 치료비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까지 다른 병증 치료보다 환자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 큰 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화상으로 인한 상처 치료는 일상적인 생활에 장애가 될 정도라는 의사의 판단이 있어야 건보 대상이 된다” 며 “안면성형의 경우 대부분 보험지원을 받지만 사지성형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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