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생이 구구단을 배울 때는 일단 외우고 본다. 과학 공부도 일단 기본적인 사실과 원리를 배우고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으로 출발하지만, 사고의 폭이 넓어지면 전에 배웠던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더불어 응용력도 생긴다.
2008년 대학입시부터 시행이 예상되는 자연계 통합논술에서는 평소에 얼마나 자연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책을 읽고 사고했는지 평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핵분열 연쇄반응의 원리
북한의 핵실험 덕분에 최근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핵분열 연쇄반응을 통하여 사고력 훈련의 예를 들어보자. 일단 교과서적 지식은 다음과 같다.
우라늄-235 원자핵에 중성자 한 개가 충돌하면 바륨, 크립톤 등 우라늄 원자핵 크기의 절반으로 갈라지면서 두 개의 중성자가 튀어나온다. 마치 수박씨 한 개를 수박 덩어리에 대고 쏘았더니 수박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수박씨가 두 개 튀어나오는 것 같은 기상천외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핵분열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중성자는 다시 두 개의 우라늄 원자핵을 갈라놓으면서 각각 두 개, 그러니까 모두 네 개의 중성자를 내놓는다. 이처럼 핵분열은 2, 4, 8, 16, 32 식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서 순식간에 핵폭발로 이어진다.
그런데 왜 우라늄 원자핵이 분열하면 들어간 것보다 많은 수의 중성자가 나오는지는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왜 중성자가 원자핵에 들어 있는지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나 양성자가 한 개인 수소는 중성자가 없어도 되지만 양성자가 두 개인 헬륨부터 모든 무거운 원소는 중성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아울러 원자가 무거워질수록 양성자에 비해 더 많은 수의 중성자가 들어 있다는 교과서적 사실을 놓고 생각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사이 나쁜 두 죄수를 독방에 가두어 두려면 두 사람의 간수로 충분하다. 양성자 두 개와 중성자 두 개로 이루어진 헬륨의 경우가 그렇다. 50명의 죄수를 한 방에 가두어 두려면 50명의 간수로는 불충분하다.
손이 닫는 거리에서 치고 받는데 그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죄수들끼리도 눈을 흘기며 싸우기는 마찬가지인데 간수의 입장에서는 자기 바로 옆에서 싸우는 죄수들을 떼어 말리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50명의 죄수가 있는 방에는 예컨대 70명의 간수가 필요하다. 양성자가 56개인 바륨은 86개의 중성자를 가지고 있다. 같은 이유로 죄수가 100명이 되면 50명일 때의 두 배인 140명의 간수로는 모자란다.
● 양성자 묶어주는 중성자의 역할
우라늄-235 원자핵은 92명의 죄수와 143명의 간수가 바글거리는 방에 해당한다. 92개의 양성자는 각각의 양전하 때문에 서로 반발하고 있다. 143개의 중성자는 바로 옆의 양성자들을 붙잡아 주면서 겨우 핵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중성자 한 개가 우라늄 원자핵에 충돌해서 핵을 뒤흔들어 놓으면 불안해진 핵은 반 정도 크기의 바륨과 크립톤 핵으로 분열한다.
100명의 죄수가 있던 방을 50명 짜리 방 두 개로 나누어 놓으면 간수가 남아돌게 되듯이 우라늄 핵이 분열하면 바륨과 크립톤은 중성자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고 그 군살로 남은 중성자가 튀어나와서 옆의 우라늄 핵을 다시 분열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원자탄의 폭발도, 핵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도 중성자 군살 빼기의 결과인 셈이다.
이처럼 핵분열 연쇄반응에 대한 의문은 전기적으로 반발하는 양성자를 묶어주는 중성자의 역할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그런데 중성자는 어떻게 양성자들을 묶어서 생명에 필수적인 탄소, 산소, 질소, 인 등 무거운 원소를 만드는 것일까?
김희준ㆍ서울대 화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