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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공직자의 말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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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공직자의 말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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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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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총회 같은 국제회의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를 독점해 놓고 기다리다 장관이 타면 우르르 따라 타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 공무원들이다."

고등법원 판사 출신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근무하다가 2002년 퇴직한 임영철 변호사는 퇴임 무렵 쓴 책에서 행정부 공무원들의 '해바라기 행태'를 이렇게 비판했다.

"한국 고위 관료들이 부하 공무원들로부터 수발을 받는 모습은 가히 조폭적 예우 수준"이라고도 했다. 부처 공무원들은 장관만 올려다보고, 장관은 대통령 눈치만 살피면서 일한다는 것이 그의 짧지 않은 정부부처 근무 소감이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공직자의 이러한 행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언론의 수 차례 비판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딴소리를 해대는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 장관이 되기 전 그는 대부분의 건교부 공무원들이 그러하듯이 개발과 건설경기 부양 옹호론자였다.

외환위기 이후엔 주택도시국장으로서 분양가 자율화, 양도세 감면 등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을 주도했다. 그린벨트 해제도 그의 손에서 다뤄졌다. 그런 그가 지금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 선봉장으로 나서 강경 규제책을 주도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장관이 된 뒤 그의 언행을 접하면서 그가 언제부터 저런 '소신'을 갖게 됐나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현 정부의 정책을 옹호하면서 내뱉는 좌충우돌의 언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날 선 말씨를 흉내내고 있다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정치인이나 관료나 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현실에서 추 장관 경우가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2000년 건교부는 국토균형발전 정책의 하나로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중앙부처나 힘있는 기관의 지방 이전은 왜 고려하지 않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건교부 당국자들은 별의별 이유를 대면서 불가론을 폈다. 그들이 현 정부 들어 행정수도 이전을 주도할 줄은 당시엔 상상하기 어려웠다.

소신은 바뀔 수 있지만 왜 바뀌었는지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던 건교부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하루 아침에 태도를 돌변해 "언제 우리가 반대했냐"고 성을 내는 꼴은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

고위 공직자의 해바라기 행태나 말 바꾸기가 그의 도덕성에 국한된다면 그나마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정부와 정책의 신뢰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정부의 말은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는다는 게 시장의 분위기다. '정부 발표와 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믿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추 장관이 "지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자 시장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정부 정책이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정부가 신뢰를 잃은 것은 정책 당국자들이 그 말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추 장관의 말을 믿고 있다가 손해를 본들 그가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내놓기에 앞서 이 같은 신뢰의 위기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신뢰를 잃은 공직자를 어떻게 할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김상철 경제부 차장대우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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