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오 숙부, 내 몸도 토막내 주시오. 토막 난 어미에게서 나온 육신이니 나도 토막으로 닮게 하여주오.” 세조에게 꽂히는 단종의 단말마가 지켜보는 자들의 애를 끊는다. 조선시대 잔혹사가 들머리에 앉힐 비극, 계유정난. 세칭 단종애사다.
그 사건을 극작ㆍ연출가 오태석(66) 씨가 <태> (胎)란 제목의 연극으로 처음 무대화했던 것이 1974년. 유신 철폐를 외치던 장준하 백기완 등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하기 위해 소급계엄령까지 내려지는 암울했던 시절. 목화 동랑 등 소극장과 일본 등지를 전전했던 이 작품은 97년 국립극단의 제172회 정기공연으로 본격 재조명된 뒤 2000년 국립극장의 50주년 기념작으로 선정됐고, 지금은 한국 대표 공연물이 됐다. 태>
국립극장이 시작하는 ‘국가브랜드 공연사업’에서 이 연극이 제1호로 선정돼 우리 성정의 원형을 대변하는 문화 콘텐츠로 거듭난다. <태> 는 내년 1월6~10일 인도 초청 공연을 앞두고 있어 이번 무대는 시연회 성격까지 겸하는 셈인데, 일본 구주 지역 공연도 예정돼 있다. 태>
이번에도 오씨의 ‘버전 업’벽(癖)이 작동한다. 이 시대 젊은 관객들을 위해 시청각 장치의 비중을 더 늘렸다. 죽은 자들을 돋보이게 하는 복식을 입히는 등 망자들에 대한 시각적 비중을 더 높였고, 국악단과 창극단 등의 협력을 얻어 한국적 구음(口音)의 새로운 가능성도 모색한다. 오씨는 “시간에 쫓겨 제대로 못다 했으나, 이제는 번듯한 물건을 만들어낼 텃밭이 주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국립극장의 이 사업은 지난해 10월 당시 김명곤 극장장의 발의로 문화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았다. 지난 4월 심사를 거쳐 1차 사업 작품들을 선정했다. <태> 를 비롯해 국립창극단의 창극 <청> (淸ㆍ안숙선 작창),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 (배정혜 안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가칭 <기독교, 불교, 도교, 무교를 주제로 한 네 개의 위탁곡> (박범훈 등 작곡) 등 산하 4개 단체의 대표작들이 한국 정서의 보편화라는 표어에 가장 부합하는 공연으로 뽑혔다. 기독교,> 춤,> 청> 태>
새 시대의 고전을 발굴해 지속적으로 수정ㆍ보완해 간다는 의미에 무게를 둔 이 사업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5억. <춤, 춘향> 을 공연하는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배정혜 씨는 “해외공연을 염두에 두고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보편성에 초점을 두었다”며 “2002년 첫선을 보였지만, 계속 업그레이드 중”이라고 말했다. 춤,>
한국 악기와 양악기로 이뤄진 15인조 악단의 실황 연주, 현대화시킨 한복 등 꾸준한 시청각적 변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배 씨는 “우리 공연물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해외시장에 팔 수 있게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계기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무대는 내년 4월 국립극장에서 시연회를 가진 뒤, 9월 중국 유럽 등지를 순회한다.
‘태’는 11월 10~1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장민호 백성희 김재건 등 출연. 화~금 오후 7시30분, 토 4시 7시, 일 4시. (02)2280-4115~6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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