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10ㆍ25 재보선을 경과하면서 요동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여당의 완패로 귀결된 선거 결과도 그렇지만 시기적으로 국정감사가 조만간 끝나는 만큼 그간 잠복해있던 정계개편의 흐름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향후 정치권 이합집산의 진앙지가 열린우리당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오래 전부터 내부 균열이 시작됐고, 민심 이반이 또 한번 확인된 터라 더이상 어정쩡한 봉합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초선의원 모임인 ‘처음처럼’이 재보선 이튿날인 26일에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포함해 정계개편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한 게 단적인 예다.
대체로 여당의 참패가 예상됐다는 점에서 이번 재보선은 그 자체보다는 의원들의 행보가 훨씬 자유로워질 국감 종료를 코 앞에 두고 치러졌다는 점에서 여당 발(發) 정계개편 논의의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일차적으로는 재보선 결과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에서 출발하겠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큰 파장을 낳긴 어려울 듯하다. 대신 “우리당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기류가 확산되고 당의 존폐 논란이 가열되면서 ‘헤쳐모여식 통합’을 선호하는 다수 의원들과 우리당 중심의 재편을 모색하자는 친노(親盧)그룹의 갈등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민주당이 “호남 민심의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했다”며 민주당 중심의 범 여권 통합신당 추진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고, 최근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는 고건 전 총리측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 모두 ‘마음이 떠난’ 우리당 의원들을 겨냥하고 있다. 당장은 호남권 일부 의원들의 이탈 움직임도 예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연말까지는 큰 판의 이합집산이 일어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공학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만큼 별다른 대의 명분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우리당 의원들이 둥지를 뜨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당 내에선 북핵 문제를 포함한 안보ㆍ남북관계 해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이라크 파병 연장안 처리 등을 둘러싼 노선 갈등이 향후 정계개편의 추동력이 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우선은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 사이의 전면전이 시작될 개연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또 이념과 노선에 따른 정계개편이라는 명분 속에서 국민적 지지를 더 받는 정파가 정치권 새판짜기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느긋한 한나라당은 보수대연합 행보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북한 핵실험이나 경제 문제에 집중해야 할 시기”(임태희 여의도연구소장)라는 얘기에는 여당의 판 흔들기를 경계하면서 ‘지지율 다지기’에 나서겠다는 의중이 담겨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사이의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당내 갈등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다. 더욱이 범여권 통합 추진세력의 일부가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일부 개혁 성향 의원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도 정계개편 논란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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