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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시대의 역사' 고문, 끔찍한 역사의 상처를 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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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시대의 역사' 고문, 끔찍한 역사의 상처를 들추다

입력
2006.10.2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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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단어, 정의할 수 없는 개념, 가장 끔찍하고 아프고 비통한 일을 표현해야 할 때 우리는 ‘고문’이라 말하리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끔찍함이 일상이던 때가 멀지않은 과거에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고통이 일상화하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고통이 고통이 아니게 되는 것은 더 끔찍한 일이고, 그것을 되돌아보는 일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는 고문을 이야기하며 과거시제를 선택해도 좋은가.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인 박원순(50)씨가 일제 감정기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자행된 고문의 욕된 자료와 흔적들을 10년 넘게 샅샅이 찾고 정리해 3권의 책으로 묶었다. 모두 1,600여쪽에 이르는 <야만시대의 기록> (역사비평사 발행)이다. “어느 날 자신의 집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납치되고 연행돼 가족과 친구조차 소재를 알 수 없는 어느 지하실에서 홀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중략)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시대, 전두환의 ‘정의로운 사회’ 시대, 노태우의 ‘보통사람들’의 시대였다. 그것은 그 이후 ‘문민정부’ 또는 ‘국민의 정부’때에도 그치지 않았다.”(머리말에서)

2권과 3권은 시기별, 정권별 고문 사례들을 담고있다. 일제와 미군정, 이승만 정권과 제주4ㆍ3사건, 박정희 용공조작 시대의 고문이 2권에, 5ㆍ18 광주항쟁과 삼청교육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 등 “고문으로 시작해 고문으로 끝난” 전두환 정권서부터 지금 이 정부의 인권침해 사례까지가 3권에 수록됐다. 그리고 1권에는 일제의 유산이자 인류 보편의 유산인 고문의 배경과 특징, 고문의 절차와 방식, 고문 주체들의 기술, 피해자들의 삶과 현실, 대책, 가해자 문제, 수사기구 개혁과 고문관련 법제의 현실과 과제 등이 실려있다.

저자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2조 제2항을 “지난 시대에는 완전한 장식물”이었다고 진단한다.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인권정책과 인권상황이 크게 개선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인권제도의 개선이 바로 인권 개선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적고 있다. 지금도 교정시설과 군대 내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인권 침해사례가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 고문사건에 대한 정부의 전반적인 조사와 사죄, 피해자에 대한 배상, 재심을 통한 원상회복 등을 촉구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고문과 가혹행위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포함한 인권 유린에 대해 우리 모두가 감수성을 높여 예민하게 관찰해야 한다.” 책 1권의 한 소제목처럼 인간의 영혼은 질그릇처럼 약해서, 순간의 고문에도 그 상처는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끝내 아물지 않을, 아물 수 없는, 그 상처의 흉터들이다. “마치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아니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살아가지만 영혼의 흉터는 아주 지울 수 없는 것이기에. 고문은 그래서, 결코 과거시제의 시렁 위에 얹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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