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청 근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옷이 빽빽이 걸린 행거를 봤다. 한 옷가게 유리벽 앞이었다. 살만한 옷이 있나 옷들을 젖혀봤다. 연보랏빛과 청회색 줄이 번갈아 쳐진 티셔츠가 눈에 들었다. 쓸쓸히 바랜듯한 티셔츠였다. 그걸 빼들고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주인이 잠가놓고 잠깐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그를 기다리면서 또 행거를 뒤적거렸다. 마을버스가 세 대 지나가고, 옷을 한 벌 더 고르고, 한 아주머니가 합류해 입어보는 재킷을 품평해주고, 그러도록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처라도 남겨놓지." 아주머니는 아쉬운 듯 옷을 되걸고 가던 길을 갔다.
그 가게는 '오페라 구제 3호점'이었다. 어쩐지 옷들이 좀 낡은 느낌이더라니. 내가 고른 티셔츠도 누군가 입던 것이었다. 그걸 안 다음에도 내 마음은 변치 않았다. 어쩐지 나를 기다리고 있던 옷 같았다.
다음날, 가게를 다시 찾아갔다. 또 잠겨 있었다. 이번엔 문에 연락처가 남겨져 있었다. 전화통화 후 주인이 와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내 티셔츠가 보이지 않았다. "누가 사갔나 보네요." 주인이 말했다. 그 옷을 좋아할 사람은 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