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재정을 연초에 조기 집행하는 방식으로 하강 국면에 들어선 경기를 떠받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까지‘경기부양’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정부지만, 북한 핵실험 사태로 경기 하강폭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자 ‘경기관리’라는 조심스러운 표현을 써가며 경기부양 가능성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20일 한국능률협회 주최의‘최고경영자 조찬회’ 강연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가 가능하지만 교역조건 악화로 실제 국내에 떨어지는 국민총소득(GNI)은 1.5% 증가에 그칠 것”이라며 “이는 사실상 불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성장률은 올해 3분기 4.6%, 4분기 4.0%로 전망되는데 내년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재정 조기집행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밝혔다.
권 부총리는 “내년 거시경제정책 조합은 여러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일단 예산은 경기 중립적이지만 분기별로 (경기의) 부침이 예상되므로 재정조기집행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면서 “재정집행 타당성 조사 등을 12월에 마치고 (공공공사 등의) 발주를 1월에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권 부총리는 19일 언론 브리핑에서도 “성장잠재력 이하로 성장률이 하락할 경우 경기 대책을 통해 잠재적 수준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경기관리’는 정부의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권 부총리가 재정정책에 대해 언급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재정집행은 통화정책과 함께 대표적인 거시정책으로, 각 부문의 재정을 빨리 집행할수록 단기 경기 부양효과가 크다. 권 부총리는 9월까지만 하더라도 민생경제가 어려운 부분은 거시정책이 아닌 구조적인 미시접근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이런 입장에 대해 신석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아직 재정을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년 상반기에 많이 쓰고 하반기에 적게 쓰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경기부양으로 해석할 정도는 아니다”며 “정부로서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권 부총리의 발언 취지로 볼 때 앞으로 북한 핵 사태 추이와 세계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치권에선 이미 ‘경기부양 카드’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등 야당은 벌써부터 “경기부양 조치가 내년 대선을 겨냥한 것 아니냐”며 공세를 펴고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