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제 보장과 核 비확산 교환 의도 -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은 체제 보장을 위한 미국과의 담판을 요구하는 카드로 핵 문제를 다뤄왔다. 이 시점에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통해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핵실험을 안 할 테니까 체제 보장을 위해 북한과 미국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북미 직접 대화를 할 기회를 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체제 보장과 핵 비확산을 맞교환 하자는 게 김 위원장의 의도라고 생각된다. 핵 포기를 할 수 있으니 체제 보장을 해달라는 얘기다. 이런 구도는 1994년 때와 비슷하고, 지난해 9ㆍ19 공동성명에서 언급된 ‘핵 폐기 프로그램과 북미 관계 정상화의 맞교환’ 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로 보인다. 북한이 협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고, 이것을 미국이 받아주느냐 여부가 관건이다. 미국은 대화 양식을 문제 삼고 있다. 쉽게 말하면 미국이 양자회담의 성격이 강한 다자회담을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을 요구하는 것이고, 미국은 다자회담 틀을 주장한다. 그렇다고 미국이 양자회담을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다자 틀 속에서의 양자회담은 받아들일 수도 있다. 미국도 외교적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상황인 만큼 북의 대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어정쩡한 위기상태 당분간 계속 -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정일 위원장은 1차 핵실험으로 이미 군부 동요 억제 효과를 거뒀다. 그래서 2차 핵실험을 잠정 유보해도 나쁠 게 없고, 당장 2차 실험을 강행해 핵 사태가 지나치게 빨리 진행되면 오히려 정권에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무엇보다 1차 실험 이후 미국 등 국제사회 분위기를 보면서 경거망동 하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이 컸을 것이다.
북한은 1차 핵실험으로 한미 관계를 더욱 동요시키고 한국 사회에 큰 혼란을 일으키는 등 의도한 성과를 충분히 얻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으로 일단 미국이 대북 제재를 몰아치는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본다. 북한이 핵 수출 등 핵 확산 시도를 하지 않는 한 어정쩡한 위기 상태가 장기간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언젠가 또 핵실험을 할 것이다.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측에 가장 뼈 아픈 부분인 금융 제재 철회가 선결되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설 이유가 별로 없다. 금융 제재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수용 불가능한 다른 조건을 내세우며 예측 불가능한 선택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6자 회담 틀을 놔두고 따로 북한과 양자 회담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다. 중국이 이번에 북한을 설득한 것은 핵 포기 자체를 원해서라기보다 편의상 당분간 2차 실험을 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북중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 6者같은 다자 대화창구 열릴 것 -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이 북한에 간 목적은 추가로 핵실험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북한이 일단 명분을 살리면서 호응을 했다. 국지전 유발을 막기 위한 방안을 내놓은 셈이다. 이는 북한이 핵실험으로 이미 얻을 것은 얻었다고 생각했다는 증거다. 핵실험 성공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음에도 핵 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됐기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 양국 모두 명분을 살린 ‘윈윈 게임’이다. 중국은 북한을 설득해 돌파구를 만들고 해결한 모양새를 얻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제재위원회를 구성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번 김 위원장의 발언으로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를 급박하게 적용하기 보다는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분위기로 바뀔 것이다. 물론 미국은 북미대화에 당장 응하지는 않을 것이고, 6자회담 같은 다자회담 차원에서 대화 창구가 열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나 유엔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여전히 6자회담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북한이 이쯤에서 핵 보유국으로서 자신 있게 대화에 나올 것이다.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상황이 드디어 풀려가는 수순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위기가 완화됐으니 다행이지만 앞으로도 어정쩡한 입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정부는 이번 핵실험 사태 내내 기회를 살리지도 못하고 외교력 부재를 여실히 보여줬다. 중국과 달리 아무 역할도 못했다. 우리가 북한에 가진 지렛대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