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최규하 전 대통령의 별세와 함께 12ㆍ12사태와 5ㆍ17 계엄 확대 및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최 전 대통령의 하야 등의 구체적 진상도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 전 대통령은 당시 신군부의 권력 장악 과정과 자신의 하야 배경에 대해 정확하게 증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979년 12월12일, 당시 신군부는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과정에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방조한 혐의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휘하 병력을 동원, 전격적으로 정 사령관을 강제 연행했다.
권력 장악을 위한 신군부의 첫 조치였다. 같은 시각 전두환 합수본부장은 최 대통령을 찾아가 정 사령관에 대한 체포 재가를 요청한다. 하지만 최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데려오라"며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군부는 권총을 차고 최 대통령을 만나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결국 최 대통령은 13일 새벽 정 총장의 연행을 재가했지만 그날 밤 재가가 이뤄진 경위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1980년 5ㆍ17 전국 계엄 확대 과정에서 신군부가 어떤 압력을 가했고 최 대통령이 무슨 경위로 재가했는지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5ㆍ18 광주민주화 운동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인명이 총탄에 희생됐지만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포 명령자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최 전 대통령은 명목상이지만 당시 국군 통수권자였다.
그는 80년 8월16일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하야를 결심하게 된 구체적 배경은 밝혀지지 않았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12ㆍ12는 '군사반란'으로, 5ㆍ18은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지만 최 전 대통령은 이 사건들의 내막에 대해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국회 청문회에도 나서지 않았으며 회고록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법정에 불려 나오기도 했지만 시원스럽게 증언한 적이 없다.
최 전 대통령 비서실장인 최흥순씨는 "회고록은 없는 것으로 알지만 혹시 개인적 메모는 있을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 전 대통령이 주요 사건에 대한 비망록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어 주목된다.
최 전 대통령이 끝까지 침묵을 지켜온 데 대해 갖가지 의문이 제기돼왔다. 특히 그가 신군부가 자행한 정권탈취 음모의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신군부의 집권을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의혹도 거론돼왔다.
퇴임 이후를 보장 받기 위해 민간에 의한 대통령 선출보다는 신군부의 집권을 도운 게 아니냐는 것이다. 때문에 그가 하야 성명을 발표한 직후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 지지 연설을 한 것이 최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신군부와의 '악연'을 가슴 속에 묻은 채 세상을 떠났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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