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국에 사는 대부분의 동포들이 한국의 상황에 대해 갖는 느낌은 대체로 '헷갈린다'는 것이다. 한국의 친지들을 걱정해서 전화를 걸면 예상과는 달리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에 접하게 되는 것이 헷갈리는 가장 큰 이유다. 전화를 끊고 나면 괜히 별 것도 아닌 일을 갖고 호들갑을 떤 것 같아 꽤나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 재미동포, 북핵 무관심 우려
이 무관심은 그러나 한 사회가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의 발생에도 불구, 평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척도로서의 성숙함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내의 대북 포용정책 옹호론자들은 국민들이 '사재기'에 나서지 않는 것 자체가 포용정책의 성과라고 주장한다.
검증은 어렵지만 이런 설명이 맞는 구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객관적 정세와 현실적 위협에 따른 정당한 자체 경보의 발동을 막는 무관심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미 동포들이 한국에 만연한 무관심을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일반 국민들의 상대적 무관심과는 또 달리 한국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공방에서는 한국의 북한 핵실험 대응에 내포된 위험과 괴리의 요인이 보다 확연해진다.
정치권의 분열상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서 핵실험으로 위기가 증폭될수록 접점을 찾아가기는커녕 거꾸로 한층 적나라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포용정책의 폐기, 또는 유지가 마치 북한 핵 사태의 처음이자 끝이라도 되는 양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혼란과 분열을 부채질하는 정치권의 모습 뒤에는 내년 대선 게임을 염두에 둔 노골적 계산이 숨겨져 있다는 한 국회의원의 '고백'은 그 자체가 충격이다.
지난 주 주미 한국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워싱턴에 왔던 모 의원은 비공식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포용정책과 공동운명체이고 싫어도 매달릴 수 밖에 없다"면서 "포용정책에서 멀어지는 순간 그나마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지지세력이 떨어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포용정책 옹호세력은 노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은 사람들인데 이들은 노 대통령이 대선에서 최소한도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라면서 "이런 노 대통령의 정치적 지분이 없어지면 바로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자신의 설명을 이어갔다.
● 대선 계산해 혼란 부추기다니
이런 발언이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나왔다면 정치 공세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북 정책이 당파성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며 한 말이었기 때문에 새겨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포용정책을 지켜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선에 개입할 수 있는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길게 보면 포용정책은 아마도 보완, 유지돼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포용정책이 중요한 국가정책으로 존속키 위해선 어떻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바탕 위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점도 똑같이 강조돼야 한다.
고태성 워싱턴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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