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박사’들이 해외로 나선다.
대학은 물론 기업, 연구소들이 새로운 교수나 직원을 뽑을 때마다 해외학위가 있는지를 먼저 따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외국으로 떠나고 해마다 ‘노는 외국 박사’들이 수 백명씩 쏟아져 나오는 게 현실이다. 해외학위 홍수 속에서 명함도 못 내미는 ‘토종박사’들은 취직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나 지방대학 박사들은 지방 출신이라는 또 하나의 벽 앞에서 좌절하기 일쑤다.
이 같은 악조건을 뚫고 국내에서 공부한 박사들이 초특급 대우로 외국 연구기관에 취직하고 해외 유명 대학에 교수로 뽑히는 등 ‘토종 박사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피나는 노력과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오기로 똘똘 뭉쳐 각 분야에서 최고로 거듭났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8월 박사학위를 받은 김종성(32)씨는 얼마 전 캐나다 서스캐처원대학 독성센터에 정식 연구원으로 발탁됐다. 김씨의 연봉은 8만 달러(약 8,000만원)다. 캐나다와 미국의 경우 유명 연구소 정식 연구원이나 유명 대학 교수로 뽑히면 보통 초봉이 4만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김씨의 연봉은 파격이다.
서스캐처원대가 김씨에게 융숭한 대접을 한 이유는 그의 놀라운 연구 업적 때문이다. 석ㆍ박사 과정 6년 동안 그가 쓴 논문 20편이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저널에 실렸다. 서울대 이공계 학생들은 석ㆍ박사 기간 동안 SCI에 3,4편을 싣는 게 보통이다. 서울대 이공계 교수의 1인당 연간 SCI 논문도 약 2편에 불과한 실정이다.
연구자의 실력과 논문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인 피인용 지수에서 김씨의 활약은 더욱 돋보인다. 그의 논문은 무려 428회나 인용됐다. 10회 이상 인용된 논문이 11편이고 이 중 3편은 50회 이상 인용됐다. 김씨는 올해 마르퀴즈 후즈후 등 세계적인 인명사전 2곳에 이름을 올렸다.
김씨의 전공은 해양환경과 해양생태다. 그는 “하루 평균 16시간씩 실험실이나 바다를 누볐다”며 “잠자는 시간을 빼면 거의 공부하는 데만 쓴 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전국 각지의 바다, 갯벌 등지를 수 차례 돌아다녔다. 김씨는 앞으로 바다 환경이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 환경영향 평가에 대한 정확한 기준과 구체적 모델이 없다”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과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머지 않아 한국에 돌아와 나처럼 한국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후배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손병철씨는 홍콩 명문 시티대 조교수로
역시 8월 서울대 경영대에서 기업가치 평가 모델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손병철(41)씨는 홍콩 4대 명문대 중 하나인 홍콩시티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손씨는 미국 유명대학 박사학위를 가진 이들이 받는 B-7, B-8보다 높은 B-10 등급의 연봉을 받고 있는데 인문계열 출신으로 해외에 곧바로 진출한 점이 두드러진다.
해외에 진출한 지방대 출신 토종박사들도 여럿 있다. 7월 미국 사우스다코다주립대 생화학과 조교수로 임용된 유영제씨는 충남대에서 학사ㆍ석사ㆍ박사를 했다. 충북대 의류학과에서 학·석사를, 충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은영씨는 2004년부터 미국 노스텍사스대 조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전남대에서 학위를 딴 이수경씨는 같은 해 미국 베일러의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인하대에서 학ㆍ석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를 받은 함동한씨는 지난해 영국 미들섹스대 전기전산학부 수석 연구조교수로 뽑혔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김종성 박사는 누구
▲1994년 서울대 자연대 지질해양학과군 입학, 2000년 석사, 2006년 박사 ▲국제 학술지 SCI 논문 20편, 국제 학술 발표 31회, 논문 20편 심사자로 참가 ▲2006년 세계적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후 등재 ▲2006년 현재 논문 피인용 회수 428회 ▲ 8만 달러 받고 캐나다 서스캐처원대 독성센터 정식연구원으로 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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