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대선을 불과 몇일 앞둔 2002년 12월, 북한의 핵 시설 재가동 선언으로 북핵 문제가 이슈가 되자 민주당 노무현 후보측은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대북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강경론자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고조될 것이므로 포용론자인 노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신문광고에도 등장한 이 구호는 이 후보의 슬로건인 '안정이냐, 혼돈이냐'를 압도했다. 선거 막판 대중의 시선은 선정적인 데로 쏠리게 돼 있다.
그런데 이것이 최근 대북 정책에 관한 한 노 대통령의 우군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허구임이 드러난 것은 아이러니다. 김 전 대통령은 11일 북한 핵 실험 후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사태의 책임은 북한과 미국에 있다. 핵 실험은 미국의 대북 정책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정부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북핵 문제 당사국은 원래 북한과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북한에 정성을 기울여도, 북미관계에 따라 상황이 일거에 나빠질 수 있음을 이번 사태는 보여주었다. 대북 포용정책이 남북간 경제적, 인적교류에는 효과를 거뒀을지언정 북핵 위험 감소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음이 증명됐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은 우리가 북핵 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벌어지는 게 아니라 북미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생길 수도 있는, 아주 낮은 확률의 경우의 수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대선 당시 '전쟁이냐, 평화냐'는 구호는 혹세무민(惑世誣民)에 가깝다.
하지만 포용정책 주도세력이 처음부터 이 같은 본질을 설파한 것은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6ㆍ15 공동선언 이후 평양에서 돌아와 무슨 강박관념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햇볕정책 덕분에 2002년 월드컵이 무사히 치러졌다"는 말도 했다. '햇볕정책=한반도 평화'라는 등식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주도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대선 때는 '북핵 해결 노력'이 아니라 '북핵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다. "이상론 아니냐"는 지적엔 "민족의 운명을 다른 나라에 맡기겠다는 것이냐"는 면박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북한의 핵 실험 강행으로 전쟁위험이 거론되는 지금, 그들은 더 이상 '주도'를 말하지 못한다. 무슨 목적에서인지 한반도 평화의 필요조건을 충분조건인양 우겼지만, 민망한 결과다.
그러나 본인들은 전혀 민망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와서 미국을 탓하고,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을 만들었다는 말이냐"며 논점을 흐리는데 열심이다. "정책은 결과로 말해야 한다"는 상식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포용정책에 대한 찬반을 떠나 보는 이를 불쾌하게 만든다. 왜 신성모독을 당한 것처럼 화부터 내는가. 말을 줄이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냉정히 자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순서다. 차제에 싸움판을 키워 뿔뿔이 흩어져 있는 지지세력을 다시 엮어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유성식 정치부장 직대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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