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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복궁 신무문을 열고 보니

입력
2006.10.1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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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문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개방'을 좋아한다. 요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대원군식 '쇄국'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세상의 갖가지 문물과 관습은 근본적으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 불길함에서 상서로움으로

그것은 세상의 다양함에 눈뜨게 하면서, 나 자신과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적 태도에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자유로움'이란 대체로 '열려 있는' 마음과 무관하지 않음을 나는 믿고 있다. 닫으려는 마음, 닫힌 것, 폐쇄적인 세계에는 때로 어둡고 상서롭지 못한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금지된 것들, 금지된 지가 오래 되어 우리와 무관해 보이기조차 하는 것들이 천천히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경복궁 신무문(神武門)에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 것은 1961년부터 라고 들었다.

쿠데타를 통해 들어선 당시 권력의 속성상 자기보존을 위해 비상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권력의 '권위'란 그 권력이 금지한 것들이 지켜질수록 정당성을 얻게 되는 법이니, 접근 금지된 신무문을 그저 바라보고 지나간 나 같은 보통 시민은 그 '권위'를 위해 자기도 모르게 복역한 셈이다.

바로 이 폐쇄된 구역, 신무문 안에서 79년 12ㆍ12쿠데타의 첫 모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폐쇄된 것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는 나의 본능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또 신무문 가까이에는 명성황후 시해 장소가 있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나는 그 시해 장소에 나타났던 저들의 음험한 영혼이 아시아를 배회하고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이제 신무문을 열어 권력과 시민의 거리를 좁히고, 맑은 이 나라 가을의 기상이 막힘 없이 통할 수 있게 한 것은 고귀한 문화유산을 마땅하게 대접하는 일일 것이다.

닫힌 공간의 어둠 속에서 반란을 수군거리거나 야스쿠니 신사에서 명성황후 시해 장소를 오가며 서성거리는 불길한 기운이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투명한 가을햇살과 불어오는 서늘한 가을바람 앞에 흩어져 갈 것이니 말이다.

● 문화재 교류 활성화 기대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문(北門)이다. 시민에게 돌려진 마지막 문화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북문을 열고 나서면, 저기 북쪽에 아직도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는 무수한 문화재가 있지 않은가? 그러니 신무문은 이제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력이 만들어 놓은 금단의 세계를 열어젖히고, 남북의 주민들이 왕래하며 우선 문화재라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대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무문이 개방되면서 비로소 경복궁의 네 문이 온전히 열리게 됐다. 활짝 열린 경복궁에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남북이 또 동서가 막힘 없이 소통하는 나라, 자유로운 세상을 다짐해도 좋으리라.

최권행ㆍ서울대 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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