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비밀이었던 프랑스 정치인들의 사생활, 특히 성생활이 금기를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 폭로됐다면 정권 교체까지도 가능했을 대통령들의 여성 편력이 그 동안 묵인돼 왔으나 이제 언론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세골렌 루아얄 전 환경장관과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 등 차기 대선주자들은 의도적으로 사생활을 노출하며 자신들이 ‘서민적’임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최근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크리스토프 뒤부아와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두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쓴 ‘섹수스 폴리티쿠스(Sexus Politicus)’라는 책이다. 17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8월 말 출간된 이 책은 현재까지 15만부나 팔리며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성공한 정치인은 거의 대부분 바람둥이라고 묘사한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내가 장관이었을 때는 몇몇 여성들이 나를 거절했지만 대통령이 되자 단 한 명도 거절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TV 프로그램에서 “대통령 시절 1,700만명의 프랑스 여성과 사랑을 나눴다”고 자신의 연애담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던 그는 79세 때 애인과 침대에서 잠을 자다 숨졌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처럼 일본인 애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설이 있다. 시라크 대통령이 애인을 만나기 위해 종종 밤늦게 엘리제궁을 빠져나가자 부인인 베르나데트 여사는 대통령의 운전사에게 “남편의 오늘 밤 위치”를 물어볼 정도였다. 이 책은 군인 정신을 중요하게 여긴 드골 전 대통령 정도만이 유일하게 여성편력이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독일 슈피겔지는 한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 정치인들의 사생활이 언론에 의해 ‘폭로’되는 수준을 넘어 정치인들 스스로가 사생활을 공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사회당의 루아얄은 5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름 하나 없이 탄탄한 몸매로 해변을 거니는 모습이 타블로이드 1면을 장식해 화제가 됐다. 아이를 출산한 후 언론에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공개하거나 선호하는 패션 브랜드 등을 밝히는 것 등도 사생활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서민적 면모’를 과시하는 전략이라고 슈피겔지는 지적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장관은 아예 할리우드 연예인 뺨치는 스캔들을 공공연하게 뿌리고 다닌다. 그는 지난해 아내인 세실리아가 수개월 동안 애인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밝히자 TV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다른 가족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공개하면서 프랑스 국민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이후 20세 연하의 여기자와 사귀는 것이 들통나기도 했으나 올해 초 ‘세실리아가 사르코지 장관에게 돌아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랑의 승리’니 ‘화해의 여름’이니 하는 제목으로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르 몽드나 르 피가로 등 유력지들은 정치인의 사생활, 특히 성 편력은 일절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파리 마치’ 등 일부 신문들은 본격적으로 차기 대선 주자들의 사생활을 취재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달라진 프랑스 정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슈피겔은 지적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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