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 핵실험 제재를 위해 한국 정부에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은 금강산 사업이 북한의 돈줄 중 하나인 만큼 이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강산 사업 중단 요구는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노림수가 금강산이 아닌 다른 데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강산관광 중단 논리는
미 고위 관계자들은 17일 금강산 사업을 향해 잇따라 직격탄을 날렸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남북 경협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결정을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대북 온건론자로 평가됐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심지어 “금강산관광은 북한에 돈을 주기 위해 고안됐다”고 비난했다. 힐 차관보는 18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만난 뒤에도 자신의 주장을 접지 않았다.
미국의 관심은 일단 북한 돈줄 차단으로 보인다. 금강산 사업은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으로 시작돼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1998년 11월 첫 관광이 시작된 이후 136만여명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그리고 지난 8년간 관광 대가로 약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이 지급됐다. 2003년부터 1인당 30~80달러의 관광 대가를 책정, 연간 1,300만~1,500만 달러 안팎을 북한에 송금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금이 문제였다. 금강산관광 대가가 핵이나 미사일을 개발하는 종자돈으로 전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현대의 사업파트너가 사실상 김정일 국방위원장 직속 기관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라는 점도 문제였다. 지난해 9월 이후 대북 금융제재로 북한의 목줄을 죄면서 효과를 본 미국이 북한의 현금 입수 통로를 그냥 놓아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노림수는 PSI?
하지만 미국의 주장에는 무리한 측면도 있다. 우선 민간기업의 상거래를 어떤 명분으로 중지시킬 것이냐는 주장이 나온다. 현대가 법적으로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현대가 북측에 건넨 현금은 2002년 이전에 대부분 지급됐고, 2003년 이후에는 매달 100만 달러 안팎의 돈밖에 송금되지 않는다.
게다가 금강산 사업 중단은 대북 햇볕정책의 폐기로 인식될 게 분명하다. 북한 해군기지가 있던 장전항을 관광지구로 탈바꿈 시켰던 금강산 사업의 성과도 물거품이 되고, 북한은 남측의 처사를 전면적인 남북관계 중단으로 받아들여 남북간 대결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정부도 당장 미국의 주장을 수긍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미국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속내는 금강산사업 중단 자체보다는 남북 경제협력사업 압박을 통한 한국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정식 참여에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 정부가 금강산 개성공단 등 두 경협사업 문제에서 양보를 할 수 없는 점을 아는 만큼 미국은 사업 중단을 카드로 활용하면서 정작 필요한 PSI 참여를 얻어내고자 한다는 분석이다. 19일 방한하는 라이스 장관도 금강산 사업보다는 PSI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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