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는 이 영화의 원죄다. 가짜 명품 사건, 된장녀 논란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 명품에 대한 인식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품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면 오락영화로서 이 영화는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명문대를 졸업한 앤드리아 삭스(앤 해서웨이)는 대학신문사 편집장 출신답게 기자의 꿈을 품고 뉴욕에 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패션지 <런웨이> 에서 비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까탈스러운 상사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를 만난다. 미란다는 출근하자마자 앤드리아의 책상 위에 옷과 가방을 던져 놓는 것은 물론 아침마다 스타벅스의 라떼를 주문하고, 드라이클리닝 맡긴 옷을 찾아오라고 하거나 심지어 쌍둥이 딸의 숙제까지 해달라고 요구한다. 런웨이>
시도 때도 없는 상사의 호출 탓에 앤드리아와 남자 친구의 애정전선에도 먹구름이 낀다. 사회 초년병 시절 직장 내 온갖 잡일을 도맡으며 ‘내가 이런 일 하려고 취직했나’라고 자조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대목이다.
영화는 앤드리아가 이런 수난을 거쳐 완벽한 비서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려 하지만 그 성공 방식은 다소 뜬금없다. 패션에 문외한이었던 앤드리아는 회사 동료로부터 ‘지미 추’ ‘마놀로 블라닉’등 명품을 지원 받으면서 자신감을 되찾고 상사로부터 인정도 받는다. 결국 근사한 얼굴과 옷걸이에 명품을 대여해 주는 친구를 둬야 성공한다는 걸까. 영화를 보는 동안 화려하게 변신하는 앤드리아의 모습에 눈은 즐겁지만 극장 밖을 나오면 왠지 입맛이 개운치 않다.
영화 초반, 앤드리아는 패션을 위해 엄청난 돈을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앤드리아의 시선 반대편에 선 미란다는 창의적 패션이 창출하는 가치를 모르는 앤드리아를 어린아이쯤으로 여긴다. 그런 두 사람의 가치관의 차이가 좀 더 세밀하게 표현됐다면 영화의 세련미는 배가됐을 것이다.
하지만 명품은 아니어도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홈쇼핑채널을 섭렵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적격이다.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의 완벽한 연기는 그가 두른 명품보다 빛난다. 로렌 와이스버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TV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 의 데이비드 프랭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26일 개봉, 12세. 섹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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