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국제방송(아리랑방송)은 외국에 한국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99년 아시아 태평양지역을 대상으로 첫 방송을 시작했다. 현재는 188개국 5,300만 가구가 보고 있다고 아리랑방송은 자랑한다. 한국인이 외국 출장을 가서 텔레비전을 켜도 나오는 것이 아리랑방송이다.
그런데 16일 내가 아리랑방송에서 본 것은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에 대한 상세한 다큐멘터리, 미국의 시트콤 '도시의 캐롤라인'(Caroline in the city), 일본 관광지 안내 프로그램 따위였다. 온천과 따끈한 국물요리를 사미센 음악에 맞춰 근사하게 잡아낸 일본관광안내프로그램을 보니 일본에 가고싶기까지 했다. 이게 무슨 방송이라고?
● 반기문도 김선욱도 아닌 부시 소개
반기문 외무장관이 유엔사무총장에 선출된 것이 며칠 전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니는 토종 피아니스트 김선욱군이 세계적인 피아노콩쿠르인 리즈콩쿠르를 최연소 나이로 석권한 것이 엊그제 일인데, 반기문씨도 김선욱군도 아닌 부시에 대한 1시간짜리 심층다큐멘터리를 하는 방송이 한국을 홍보한다고 정부가 만들어 지원하는 방송이라고?
하필 16일만 재수없이 그런 프로그램이 몰려있나 싶어서 17일에도 방송을 틀어놓았다. 그 결과 영어로 하는 아침뉴스가 끝난 후에는 어김없이 영어가르치기 프로그램이 나왔다. 롤리팝과 젤리빈이라는, 너무도 미국적인 주인공 두 명이 시끌벅적하게 초보영어를 가르쳤다.
이것이 끝나더니 이번에는 미국 교육방송(PBS)이 제작한 '바니와 친구들'(Barney and friends)이 영어 그대로, 영어 자막과 함께 방영이 됐다.
외국인한테 한국을 홍보해야 하는데 왜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두 개나 연달아 내보내야 하는 걸까? 한국의 교육방송에도 알차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16일에는 김선욱군을 매우 재미있고도 깊이있게 다뤘다), 자막만 달면 한국홍보에는 더 적격일텐데 왜 미국교육방송을 사다가 틀어야 하는지, 비밀스런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이어지는 방송도 모두가 그렇고 그런 외국홍보물이었다. 영국이나 독일의 공영방송에서 수입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국내서 자체 제작했다는 취재프로그램은 외국의 도시를 다니며 그 나라를 홍보해주는 내용이었다.
자연다큐는 한국산이지만 곤충을 다룬데다가 영어로만 설명해서 한국 홍보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연결짓기 힘들었다. 더더욱 웃긴 것은 '관광한국어'(Travelers Korean)라는 프로그램은 일본어로 진행했다. 영어자막조차 없었다. 한국 사정을 얼추만 아는 외국인이라면 '한국은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인가' 했을지도 모르겠다.
● 해외 홍보하는 국영방송
부산영화제를 다룬 현장취재프로그램이 하나 있긴 했다. 한국의 음식점문화를 소개한 것도 있었지만 아마추어가 카메라 들고 찍은 프로그램 같다. 한국의 문화현장을 소개한다는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인 첼리스트의 내한공연을 중계했다.
이게 바로 방송진흥기금과 국가예산으로 올해 모두 430억원을 지원받은 아리랑방송이 하는 짓이다. 한국의 인기드라마도 영화도 없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를 보여준다할 프로그램도 없고 _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외국의 심도높은 영어 다큐멘터리와 같이 방영되니까 한국의 수준을 망신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_ 한국말도 한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규직원만 164명이라는데 이렇다.
아리랑 방송측에서는 한국말이 드문 데 대해 "해외에 알리기 위해 영어로만 방송을 하도록 되어있다"고 했다. 그러면 일본어는 뭔지. 또 "방송사들이 인기 드라마를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 5년 이상 된 것만 아리랑에 판매한다" "한국의 관광지를 다루는 방송은 이미 옛날에 할 곳은 다 해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도 했다.
그것이 지금 아리랑방송을 보면서 한국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미국 시트콤과 영국과 독일의 다큐멘터리와 외국을 홍보하는 관광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이 더더욱 놀랍다. 아리랑방송이 본령을 잃은 지 오래인데 관리감독하는 문화관광부는 또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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