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6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제재 결의 이행과 관련, 동맹인 한국의 부담 공유를 강조하고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평소 그의 신중한 화법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이례적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그 동안 참았던,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고 보면 된다”고 평했다.
라이스 장관이 특히 한국 방문을 앞두고 이런 태도를 보였다는 것은 발언이 작심한 상태에서 터져 나왔음을 뜻한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한국 관련 대목을 찬찬히 뜯어보면 한국의 대북 조치나 움직임을 겉으로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외교적 수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이 모든 북한 관련 활동을 재평가할 것임을 분명히 했던 만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이 안보리 결의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의 태도에 미국이 적잖이 실망하고 있음이 은연중에 드러나 있다. 한국의 조치가 불만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즉답은 피했다. 하지만 일본과 호주가 안보리 제재 이외에 추가적 제재까지 선언한 것을 예로 들며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제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한국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묻어 나고 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 한국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조율된 조치’를 강조했을 때 상당한 기대감을 표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조율된 조치가 미국과의 구체적 협의를 거치지도 않은 채 “남북경협은 안보리 제재 결의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지속한다”“안보리 결의가 한국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는 일방적 판단으로 변해가자 당혹감이 증폭됐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라이스 장관은 “관련국간 정보공유, 비행기 착륙 유도, 선박 정선 및 검색 등으로 작동하는 PSI와 안보리의 북한 제재 결의는 내용적으로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라이스 장관이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의미하는 대북 억지력 유지를 언급하면서 나아가 ‘동맹으로서의 상호 의무’를 굳이 덧붙인 것도 예사롭지 않다. 또 라이스 장관은 미국이 조건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지만 지금은 안보리 제재결의 이행과 다른 방위적 수단을 강구하는데 집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접근방식은 나름대로 한국에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으나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PSI 참여=무력 충돌=전쟁 가능성’이라는 도식적 우려가 정치권의 주도로 현실감을 갖고 있다. 미국의 이런 태도가 자칫 압박이나 경고로 비칠 수 있다. 이 경우, 오히려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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