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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천신일씨의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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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천신일씨의 기증

입력
2006.10.1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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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세상 바라보는 눈을 넓고 깊게 만든다. 문명세계와 오지를 살피는 안목을 갖게 할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찰하는 눈썰미를 길러 준다.

미래학자 제레미 러프킨은 여행이야말로 미래의 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웬만큼 사는 나라의 중산층 정도 되면 물질적으로 대부분 갖추고 살기 때문이다.

주택과 자동차, 냉장고, TV, 오디오 등을 지니고 부족함 없이 사는 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은 '체험'인데, 여행만큼 역동적인 체험산업이 없다는 것이다.

▦ 젊은 나이에 여행사 경영에 나선 천신일 씨는 30년 전 서울 인사동 골동품점에서 일본인이 우리 석물을 흥정하는 모습을 보았다. 문화재가 팔려 나가려는 찰나였다. 석물이 일본으로 팔려가면 망주석은 건물 기둥으로, 문인상은 식당 장식품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그는 싸워가며 27점 모두를 사들였다.

그 때 한일 간 문화의 왜곡된 흐름을 깨달았다. 이름없는 옛 석공이 빚은 순후한 돌 조각에서 고졸미(古拙美)도 느끼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옛돌 수집에 나서 6,000여 점을 모았고, 2000년 경기 용인에 세중옛돌박물관을 세웠다.

▦ 석물은 선영에서 조상의 혼을 지키는 문인석ㆍ무인석, 악귀와 괴질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돌장승, 길손의 눈길을 잡는 귀여운 동자석이나 남근석, 부처, 생활용구 등 친숙하고도 다양하다. 그의 수집을 가장 빛내주는 일은 2001년 일본에 유출됐던 석물 70여 점을 환수해 온 것이다.

그 뒤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 돌 조각 24점을 기증해 세웠고, 미국 뉴욕 유엔본부 건물 앞에 조성된 '한국정원'에는 20여 점과 연자방아를 영구 전시했다.

▦ 15일 저녁 옛돌들이 도열해 서 있는 용인 산기슭의 박물관에서 개관 7주년 기념음악회가 열렸다. 서울시교향악단과 대표적 성악가들의 수준 높은 연주회를 듣기 위해 수백대의 자동차와 버스가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음악회장에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은 110억원대의 재산을 기증한다고 밝혀 청중을 놀라게 했다. 고려대와 연세대, 포항공대, 청소년레슬링지원단, 박물관회 등이 기증을 받았다. 여행사 운영에서 옛돌 수집으로, 다시 사회교육기관에의 기증으로 확장돼간 그의 삶의 궤적이, 음악회 못지않게 아름다워 보이는 저녁이었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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