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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옛 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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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옛 식물원

입력
2006.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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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 동물원이 10월 1일부터 폐쇄됩니다.’ 내걸린 지 제법 오랜 듯 플래카드 빛이 바래 보인다. 옛 식물원 정문 앞 좁다란 진입로 양쪽에 감나무가 서 있다. 제법 노르스름 감빛이 도는 열매를 몇 알 매달고. 내가 처음 여기 왔던 땐 없던 감나무들이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학교를 파하고 친구와 남산공원을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친구 아버지를 만났다. 부녀는 깜짝 반겼다. 그때는 남산에 방송국이 있었는데 거기가 친구 아버지 직장이었다. “식물원에 갈래?” 아버지의 제의에 친구는 팔짝 뛰며 좋아했다. 나는 그 애에게 팔짱을 끼인 채 어색하고 들뜬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수대와 식물원 사이 꽃밭을 지날 때 친구가 “아빠, 이 꽃 이름이 뭐야?” 물었다. “페추니아 같은데?” 그들 부녀가 꽃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속으로 ‘페추니아’라는 낯선 꽃 이름을 되뇌었다. 식물원 안에 들어서자마자 훅 끼치던, 식물들이 내뿜는 축축하고 강렬한 냄새와 거대한 선인장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선인장들은 대개 용설란이었는데, 파월장병들이 기증한 거였다.

폐쇄된 식물원 유리문 앞에 우두커니 섰다. 등 뒤 나무에 ‘소소소’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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