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회(회장 김두진) 기관지 ‘역사학보’ 최근호에 강단의 명망 있는 두 사학자의 공개 사과문이 실렸다. “본인들은 ‘한국금석문집성’(제28~33권, 한국국학진흥원, 2003~2005)을 펴내면서, 김용선(한림대) 교수의 ‘고려묘지명 집성’과 ‘역주고려묘지명집성’의 일부 내용을 편ㆍ역자의 사전 동의와 허락 없이 인용ㆍ전재하였습니다.… 차후 이런 일이 다시금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 교수가 두 교수의 ‘표절’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사건 심의 전 법원의 조정 과정에서 양측이 합의를 함으로써 이렇게 일단락 된 것이다. 하지만 학계는 새로운 숙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사학계나 문학계에서 흔히 관행처럼 행해져 온 한문 번역문의 무단 인용ㆍ전재 문제, 그리고 번역의 연구업적 평가 문제가 그것이다.
이번 ‘표절’소동도 그 같은 맥락에서 이해돼야 할 문제라는 것이 학계의 반응이다. 역사학회의 한 관계자는 16일 “대부분 학계 지인들 사이의 일이라 한문 번역문 인용을 할 때도 번역자의 양해를 구하지 않은 채 갖다 쓰는 일이 흔하다”며 “이번 일은 그 같은 관행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로 이해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두 교수는 금석문 탁본 사진자료집에 연구자들의 편의를 위해 김 교수의 독보적인 업적인 고려묘지명 역주본을 실으면서 책 서문에 이 같은 사실을 밝히긴 했지만, 역자의 사전 동의를 얻지 않았다.
한문 번역 및 번역서에 대한 학계의 진지한 성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언어와 비교할 수 없이 난해하고 까다로운 게 한문ㆍ고전어 번역이지만, 논문과 달리 교수 승진ㆍ채용 심사 과정에서 연구 업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풍토는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승훈 성균관대 교수는 “고전어 번역에 대한 대접이 달라져야 번역 발전도 가능하다”며 “이 일을 해프닝으로 지나쳐버릴 게 아니라 번역문 저작권 문제와 연구업적 평가 등에 대한 합리적 기준에 대해 학계가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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