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이 알려진 후, 독일 지식인은 말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인 일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끈 철학자 T.W.아도르노의 탄식이다. 말을 바꿔서, 자문을 해본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통일을 얘기하는 것이 온당한가. 얘기를 꺼내는 것이 눈치 없고 화나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이 빨리 와야 한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핵실험 이후 우리의 불안은 한층 구체화했다. 남북 협력 분위기가 적대적 대치로 복귀함으로써 핵전쟁 공포가 상존하며, 일본 대만 등 주변국의 핵개발에 빌미를 주게 되었다. 분단 60년이나 지났으나 우리는 다시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2차 대전 후 모든 나라와 패전국 독일마저도 제 자리를 찾아갔는데 한반도만 이 지경이 되었다. 남북을 이렇게 이끈 정치인들에게서 쓰라린 배신감을 맛본다. 이론가나 정치학자의 잿빛 요설도 혐오스럽다. 우방의 선의에도 회의를 갖게 된다.
●남북 정치인에게 배신감
이미 진부해진 비난이지만, 북의 김정일 위원장은 최소한의 민족적 기대까지 저버렸다. 주민을 도탄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남한을 답방하겠다는 예의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북의 파탄은 세습독재와 비민주성, 인권 경시, 폐쇄성에서 비롯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핵무장으로 역행했다.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한 부시 미국정부도 원망스럽다. 부시 행정부에는 다른 약소국을 길들이는 데 필요한 희생양으로서 만만한 적대세력의 존재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미국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큰 도움도 주었으나 적지 않은 상처도 남겼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은 우리의 민족적 정서와 통일염원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는 북이 변화하도록 도움과 기회를 주었다. 북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평화통일의 여건이 마련되도록 지원을 베풀었다. 햇볕ㆍ포용정책을 집요하게 비난해온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공격은 앞으로도 더 거세질 테지만, 이 정책들은 지금까지 계량하기 어렵도록 중요한 성과를 주었다.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조성 등이 가시적 결과라면, 적대감과 전쟁공포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심리적 효과다. 또한 같은 민족이면서 우연히 남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북 주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도 결코 정의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대북 강경책으로 대응했다면 이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북이 핵개발에 나선 것은 남에게 경제적으로 뒤지기 시작하던 1970년대부터다. 북의 핵개발은 94년 미국이 북의 플루토늄 생산 동결을 조건으로 경수로와 안전보장을 제공키로 함으로써 중단되었으나, 뒤에 부시 행정부가 강경책을 펴면서 원점으로 되돌아 갔다. 햇볕ㆍ포용정책은 그나마 시간을 번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핵실험은 포용정책에 한계가 있음을 말해준다. 이제 정부가 선택할 정책의 폭은 좁아졌다. 대신 인내심을 갖고 고난도의 곡예를 해야 한다. 북이 남의 도움을 아쉬워하며 통일을 위한 대화의 고리는 놓지 않게 해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남북 교류의 끈이 끊어져 분단이 고착화하는 것이다. 난해하더라도 우리 목표는 북의 민주화와 궁극적으로 통일에 맞춰져야 한다.
●경계할 것은 분단 고착화
새삼스레 물어 본다. 꼭 통일을 해야 하는가. 물론 그렇다. 통일이 안 됨으로써 겪는 불이익은 비정상적 사고, 사회적 갈등, 정서적 불안, 엄청난 국방비, 주변국과 경쟁에서의 불리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BRICs를 보자. 국가 발전동력은 국토 크기에서 나온다.
특히 중국은 50여 개 민족을 억지로 끌어안고 대국을 유지해 오면서, 눈 부신 속도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 통일이 안 된 상태로는 일류 국가ㆍ국민이 될 수 없다. 또한 핵실험이야말로 불안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빨리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역설이 아닌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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