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지음 / 김영사 발행ㆍ9,900원
‘전쟁에서의 가장 값진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 손자병법의 핵심이다. 손자는 이를 이루는 최고의 방법으로 벌모(伐謨)을 꼽았다. 적의 싸울 뜻(戰意)을 꺾어버리는 것이다. 그 다음은 벌교(伐交). 적의 세력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다. 칼과 창이 부딪히는 용맹무쌍한 실전보다는 암수와 비열함을 바탕으로 한 첩보ㆍ심리전이 병법의 정수라는 의미다.
‘세작’ ‘향간’ 등의 이름으로 활동한 첩보ㆍ심리전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 대군(大軍)보다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역사의 주류에서 이들은 배제됐다. 활동의 은밀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리를 따지는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강해지면서 이들의 내밀성이 경시된 탓도 있다.
책은 역사의 조연으로 밀려났던 첩자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이다. 역사 속 첩자의 활동이 절정을 이룬 때는 삼국시대. 그 중 고구려가 발군이었다. 백제의 멸망도 고구려의 승려 첩자인 도림의 작품이다. 도림은 고구려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것처럼 위장해 백제의 개로왕에게 접근했다. 개로왕의 취미인 바둑으로 왕의 마음을 빼앗은 도림은 각종 대형 토목공사를 부추겨 백제의 국력을 소진시켰다.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대막리지 연개소문 등도 별도의 세작 조직을 운영했던 첩보전의 귀재였다. 그러나 첩보 강대국 고구려는 내분과 그에 따른 상호 첩보전으로 멸망을 재촉했다.
고대 한ㆍ중 관계사를 전공한 저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남아있는 사례들을 분석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보태 당시에 암약했던 첩자들의 활약상을 되살려냈다. 첩자 이론서, 첩자 조직과 첩보술 등을 책의 말미에 실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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