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사에서 DNA 감식기법을 활용하는 게 지금은 당연하게 인식돼 있지만 그 역사는 얼마되지 않는다. 한 올의 머리카락, 미세한 피부 조각, 극미량의 체액만 확보하면 오차확률 10억분의 1로 신원을 가려낼 수 있는 DNA 감식기법은 1985년 영국 라이체스터대학에서 개발됐다.
범죄수사 방식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획기적인 이 기술은 그러나 처음부터 전폭적 신뢰를 받은 건 아니었다. 영국에선 87년 브리스톨에서 발생한 강도·강간사건에서 처음 법정증거능력을 인정 받았고 미국 법원은 90년에야 DNA 감식결과를 증거로 받아들였다.
▦ 한국은 91년 화성연쇄피살사건 수사서부터 활용하기 시작했으나 발전속도는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 화재, 대구지하철 참사, 괌 KAL기 추락 등 대형참사가 워낙 자주 발생한 때문이었다.
DNA 감식기법이 없었다면 형체도 없이 훼손된 시신들의 신원을 그토록 신속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 발생 후 프랑스인 용의자들이 "한국의 DNA 감식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했을 때 우리 수사당국이 일소에 붙였던 것도 이런 실력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 특히 귀이개와 칫솔 등에 묻은 미세 세포로 DNA 추출·대조에 성공한 것은 우리가 증거채집 등 종합적 과학수사능력에서도 대단한 수준에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실제로 2004년 남아시아 쓰나미 때 우리 과학수사팀은 현장에 집결한 39개국 팀 중에서 단연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한국이 개발한 지문 고온처리 식별법은 미국 FBI를 비롯한 각국 팀이 앞 다퉈 배워 갔고 치아 DNA 추출 등 고난도감식기술에 감탄한 다국적 신원확인팀은 6,000여 희생자의 기본 신원판단과 시신의 유전자 분석까지 맡겼다.
▦ 과학수사 관계자들은 극적으로 과장된 미 드라마 속의 CSI(과학수사대)에 빗대 우리 능력을 폄하하는 시각에 늘 불만이다. 부족한 장비와 일손 때문에 그렇지 우리 과학수사의 수준과 능력도 결코 못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주요 경찰서마다 CSI팀을 갖춘 미국과, 정밀분석기관이라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하나 뿐인 우리 실정을 단순비교하기는 힘들다.
이 점에서 경찰이 상당수준의 증거감식·분석능력을 지닌 '다기능 현장증거분석실'을 일선에 설치키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언제나 문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본 여건을 갖춰 주는 일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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