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대 대학원 석사과정 A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 앞인 요즘 수험생 3명에게 ‘족집게 과외’를 해주느라 눈코 뜰 새 없다. 그는 “논문 준비도 벅차지만 한 달에 30만원 받는 강의조교(TA) 말고는 돈 나올 데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자연대 B교수는 최근 실험실 비용 관리를 전담할 직원을 별도로 뽑아야 했다. 그는 “행정실 직원 1명이 실험실 7, 8개를 담당해야 하는데다, 연구비 관리규정도 까다로워져 자체적으로 전담직원을 두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대는 1977년 이후 세계 일류 ‘연구중심대학’으로 발돋움하겠다며 30년 가까이 노력했다. 그 결과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에서 2004년 기준으로 32위를 차지하는 등 질적으로도 성장했다.
하지만 연구 여건은 아직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 대학원생들은 ‘생계 유지’와 부족한 연구비를 마련한다며 강남학원이나 과외 현장으로 나가고, 교수들은 행정적 뒷받침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연구비 관리 등 직원 역할까지 떠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출한 연구성과나 세계적인 학자가 배출되기를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무리다.
자연대 한 교수는 얼마 전 실험도중에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실험내용이 다 날아갈 뻔 한 아찔한 경험을 했다. 그는 “본부나 단대가 몇 십만원에 불과한 무정전발전기를 마련해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을 텐데, 수십 억씩 걷어간 간접 연구비는 뭐에 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연구비 사용처도 애매하다. 서울대는 지난해 간접 연구비(공공 요금이나 연구 여건 조성 명목으로 외부 연구비 중 일부를 떼는 것) 사용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전용 카드를 지급했다. 또 물품 주문, 검수, 비용 지급 등 모든 과정을 전산화하도록 하는 연구비 관리제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학술진흥재단이 5월 현장 실사한 결과 서울대 내 많은 기관들은 연구비 사용내역에 대한 투명성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연구비가 부족한 인문대의 연구여건은 더욱 열악하다. 4월 교육부가 2단계 두뇌한국 21(BK21) 사업단 선정 결과를 발표하던 날 사업단에 뽑힌 국문과, 철학과 등은 7년 동안 56억원이라는 거액을 따내는데 성공했다며 크게 기뻐했다.
국문과 박사과정 C씨는 “매달 박사과정 90만원, 석사과정 50만원을 주는 BK21은 인문계열 학생에게 로또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인문대는 7년 전 1단계 사업단 선정 때는 “사업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BK21 참여를 거부했다. 하지만 인문대 한 교수는 “생활비가 없어 떠나는 대학원생들을 잡기 위해 자존심을 꺾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재정적, 행정적 뒷받침 이외에도 기존 학과나 전공의 틀에서 벗어나길 꺼리는 교수 사회 분위기도 성장에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대 김도연 학장은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와 기술에도 대응을 못하고 있다”며 “경쟁을 기피하고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무차별적으로 평등만 추구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고 꼬집었다.
자연대 교수는 “연구중심대학이라는 이름만 있지 구체적 실행 계획은 없다”고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서울대 외국어로만 강의 '국제캠퍼스' 조성
서울대가 세계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영어 등 외국어로만 강의하는 국제캠퍼스를 만든다.
이장무 총장은 12일 개교 60주년(15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계적 지식인과 국제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해 국제캠퍼스를 세우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유화선 파주시장을 만나는 등 경기도 일대에서 부지를 물색 중이다.
향후 5,6년 내 완공 목표인 국제캠퍼스는 국제대학원의 국제지역학과 경영대의 글로벌 경영학석사(MBA) 과정, 외교학 등을 중점 가르치게 된다.
서울대는 특히 이 캠퍼스를 외국 유명대학 학생 유치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서울대는 현재 활발한 교류협정을 통해 서울대 학생들을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대학에 보내려고 하지만 정작 유명대학 학생들은 “매력 없다”며 서울대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총장은 또 “국제캠퍼스는 서울대가 추진하는 지역별 멀티 캠퍼스 계획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 수원 광교 지구에 3만평 규모로 짓고 있는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 공사를 2년 안에 끝낼 것”이라며 “앞으로 인천 청라지구 자유구역에 10만평 규모의 의료형 연구단지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또 ‘슈퍼 스타급’인재를 키우기 위해 최우수 학생들이 전공 필수과목에 얽매이지 않고 듣고 싶은 강의를 마음껏 들을 수 있도록 하는‘자기 맞춤식 전공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 외국 대학과 진행하고 있는 대학원 공동학위제도 국내 지방대학으로 확대키로 했다.
이 총장은 통합논술 등 입시정책을 바꿀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기존 정책을 고수할 뜻을 밝혔다. 그는 4,5년 후 보완된 새 입시제도를 마련할 수 있도록 연구는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총장은 서울대 법인화와 관련, “현재 장기발전계획위원회가 법인화 안을 만들고 있다”며 “정부와의 조율과정을 거쳐 가능하면 임기 내에 법인화를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 사견임을 전제로 “공교육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사회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기여입학제를 포함해 모든 것을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사범대가 전국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논술 연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교육청이 주도하고 다른 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연수라며 모르지만 서울대 혼자 연수를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박상준기자
■ '연구비= 쌈짓돈' 여전
‘위에서 정책을 만들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下有對策ㆍ상유정책하유대책)
서울대 대학본부가 교수들의 투명한 연구비 사용을 감시하기 위해 ‘연구물품 구매관리 시스템’ 을 만드는 등 머리를 짜내고 있지만, 연구비를 쌈짓돈으로 아는 일부 교수들의 ‘양심불량’ 행태는 여전하다.
12일 학술진흥재단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에게 제출한 ‘2003년 이후 서울대에 지원한 302개 과제 연구비 관리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수 30여명이 연구비 4,300여 만원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대 Y교수는 유흥주점에서 술값으로 수십 만원을 쓰고서는 버젓이‘회의비’로 서류를 꾸몄다가 꼬리를 밟혔다. 수의대의 P, Y, 또 다른 Y교수는 최고 370만원이나 되는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 4대 보험금을 연구비에서 냈다.
연구비를 제 살림살이 불리는 데 쓴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학본부 보직을 맡고 있는 K교수는 연구비로 프린터 토너를 사 집에 가져갔다. 역시 보직 교수인 사회대 S교수는 연구와 무관한 공기청정기를 샀다.
사범대 K교수는 초등학생용 문제집, 사회대 C교수는 스카프를 샀다. 논문 심사 횟수를 속여 수당을 여러 번 타내거나, 연구실에 앉아 출장을 간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수십 만원을 슬쩍 한 교수도 여럿 있었다.
박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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