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사 출신이 아파트 경비원 겸 어린이들의 글방 선생님으로 ‘아름다운 황혼’을 가꿔가고 있다.
울산 북구 중산동 경동그린아파트 경비를 맡고 있는 조남훈(62)씨는 10일부터 경비실 옆방에 아파트 초등학생 60여명을 대상으로 ‘나눔의 글방’을 열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나눠주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은 이 글방에서 조씨는 월~금요일 경비근무가 끝나는 오후 7시부터 학년, 과목별로 5개 반으로 나눠 아이들에게 글짓기와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1998년 한화석유화학 교육훈련원장(이사급)을 끝으로 26년간의 회사생활을 마감하고 2003년부터 이 아파트에 정착한 그는 올 7월말 아파트자치회로부터 “소일 겸 경비를 맡으시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그렇다면 아이들을 가르칠 공간을 내달라”고 조건을 달아 두 가지 일을 함께 얻었다.
마침 조씨는 과거 회사 재직 중 짬짬이 북구 소재 특수학교인 ‘메아리학교’에서 장애학생들에게 글짓기를 가르친 경험이 있어 은퇴 후 이런 분야의 소일거리를 찾던 터였다.
노년의 아름다운 용기에 주변의 도움이 잇따랐다. 글방 도배와 장판공사는 회사시절 한 부하직원의 도움으로 이뤄졌고, 조씨가 활동했던 ‘메아리학교’측에서는 칠판을 제공했는가하면 책상과 교재도 옛 동료들의 십시일반으로 마련됐다. 주민들은 반상회를 열어 참가학생을 모집하는 등 지역사회의 애정과 관심 속에 글방 문이 열렸다.
196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잉여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미시령을 넘으며’ ‘자정의 불빛’ 등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한 조씨는 내년쯤 에는 아이들과 함께 동시집을 펴낼 계획도 갖고 있다.
조씨는 “두 가지 일을 새로이 맡아 몸은 비록 고단하지만 가슴에는 활력이 솟구친다”고 말했다.
울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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