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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개교 60주년/ <상> 기로에 선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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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개교 60주년/ <상> 기로에 선 서울대

입력
2006.10.1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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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서울대가 15일로 개교 60주년을 맞는다. 서울대는 수십 년 동안 경쟁자 없는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세계 63위에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국내외 다른 대학의 거센 도전과 동시에 인재 부족, 연구 여건 미비, 정체성 부재 등 내부의 어려움에 맞닥뜨려 있다. 서울대의 문제점과 '제2의 도약'을 통해 세계 일류 대학으로 가겠다는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짚어본다.

■ '세계63위' 외적성장 불구 인재들 점점 외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한 아이들 데려다 바보 만든다고 뭐라 하지만 요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지방 의대 지원하고 나서 다 떨어지면 서울대에 온다."

서울대 자연대의 한 교수는 11일 개교 60주년 소감을 묻자 한숨을 내쉬며 "학생들 수준이 예전보다 많이 낮아져 앞날이 뿌옇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와 유명 외국어고, 과학고에서는 '서울대 대비반'이 아닌 외국 명문대를 직접 겨냥한 유학반이 더 인기다. 중ㆍ고교 때 유학을 가 현지에서 곧바로 명문대에 입학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대입 합격자의 평균 수능 점수가 가장 높은 곳은 서울대 의대나 물리학과가 아니다.'서울대=무조건 1등'이라는 등식과 자존심이 깨진 지 오래다.

서울대 역시 이런 위기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정운찬 전 총장 시절 '법인화 태스크 포스'팀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사립대학에도 뒤쳐질 것"이라고 적혀있다.

서울대는 겉으로는 분명히 성장 중이다. 최근 영국 더 타임스의 순위 평가에서 63위를 기록했다. 외국인 학생을 더 받고, 연구비를 늘려 논문을 더 쓰게 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여 2004년 118위, 2005년 93위 등 꾸준히 오르고 있다. 연구 능력을 평가 지표로 쓰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에서도 32위(2004년 기준)을 차지했다.

하지만 내부 곳곳은 흔들리고 있다. 서울대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대 인문대의 경우 몇 년 째 대학원 신입생 지원자가 미달 상태다. 국사학과의 한 교수는 "몇 년 전 행정고시 합격자 5명 중 1명이 우리과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대부분 고시 공부를 하는 마당에 무엇을 가르쳐야 할 지 난감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공계도 다르지 않다. 농생대의 한 교수는 "서울대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 가고 난 뒤 빈 자리가 갈수록 늘어난다"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동남아시아 출신 학생을 채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위기를 타개 하자며 대학본부가 변화를 추구해도 번번이 좌절된다.

보직교수를 맡았던 한 교수는"'옛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1등'이라는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현실을 외면하는 교수들이 많다"며 "어지간해서는 꿈쩍도 않는 분위기가 강해 변해야 한다는 외침이 허탈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정체성의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회대의 한 교수는 "세계 일류대학, 연구 중심대학이라는 큰 주제만 있을 뿐 어떤 교육을 통해 어떤 인재를 길러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자연대의 또 다른 교수는 "주머니 두둑한 공대, 자연대는 본부 그늘에서 벗어나 혼자서 살아보겠다고 하고 인문대는 그런 이공계를 향해 손가락질한다"며 "단과대학 끼리 찢어져서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인문대의 한 교수는 "서울대가 제2의 도약을 통해 세계 일류 대학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교수와 학생, 교직원 그리고 동문 모두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깨달아야 한다"며 "변화의 방법과 모습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답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소리만 요란한 "국제화"

“미국 학생들이 별 관심이 없는데다 온다고 해도 영어로 들을 만한 수업이 없는 게 현실인데 어떻게 합니까?”

서울대 관계자는 18일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열리는 해외유학박람회 참가를 포기한 사정을 씁쓸하게 토로했다. 서울대는 전 세계 대학들이 프린스턴대 학생들을 교환학생이나 유학생으로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홍보전을 펼치는 이 행사에 매년 참가해 왔다.

이는 바로 1979년‘민족의 대학에서 세계의 대학으로’라고 선언하며 30년 가까이 국제화를 핵심 과제로 추진해 온 서울대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서울대가 지난달 외국인 유학생이 처음 세 자리를 넘어 1,148명(51개국)에 달한다며 자랑한 ‘국제화 성과’도 한 꺼풀 벗겨보면 허망한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서울대는 당시 세계 102개 대학과 교류 협정을 맺어 서울대생 125명을 내보내는 등 “국제 교류를 적극 추진한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유학생 통계에 따르면 중국 출신이 411명(35.4%), 해외 동포가 354명(30%)이었다. 또 교환학생을 보내는 협력대학 중 세계 200위(더 타임스 집계 기준) 안에 드는 명문대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국제대학원의 한 교수는 “학교시설, 교육과정, 행정서비스 등에서 내실을 충분히 다지지 않은 채 양적 증가에만 매달렸다가는 역효과만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불만도 폭발 직전이었다. “유학생을 유치할 때 설명한 내용과 다르다”는 것이다. 독일인 A(인문대 공연예술 협동과정)씨는 “번역본이 있는 원서(原書)를 다시 번역하게 한 뒤 그걸 읽는데 강의 시간 대부분을 쓴다”며 “이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들이 토론보다는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공계 대학원생인 일본인 B씨는“실험시간도 모자라는데 교수가 설문지 봉투를 붙이라고 하고, 일본 출장 항공편과 숙소 예약 등도 맡긴다”며 “일본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출신 대학원생 C씨는 “중국 학생은 수 백 명인데 유학생을 관리하는 대외협력본부에서 중국어를 할 수 하는 직원은 1,2명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대외협력본부에서 영어 등 외국어가 가능한 직원은 7명 뿐이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98년 중국 베이징(北京)대가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초청장을 보내왔는데 담당 직원이 이를 이해하지 못해 서울대 총장이 못 간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국제화의 방향에 대해 서울대 내부 합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영어 강의 확대 여부가 대표적이다. 미국과 영국 등 영어권 우수 대학에 서울대 학생을 교환 학생으로 많이 보내려면 더 많은 영미권 학생들을 서울대로 오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에는 영어 강의가 국제대학원, 이공계, 경영대의 몇 개 뿐이어서 오려는 학생이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이정재 학생처장은 “서울대로 유학 왔으면 당연히 우리말로 공부할 생각을 해야 한다”며 “왜 그들을 위해 영어 강의를 해야 하나”고 말했다.

반면 국제대학원의 한 교수는 “베이징대나 일본의 도쿄(東京)대 정도면 영어 강의가 없어도 공부하러 가겠다는 영미권 학생들이 수두룩하지만 서울대는 아직 그 수준이 아니다”며 “영어 강의를 더 많이 늘려 학생들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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