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 북한 핵 정책이 ‘핵 불용’에서 ‘핵 봉쇄’로 전환되는 것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일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이 핵무기나 물질을 제3자에 이전하는 것은 “미국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면서 “우리는 그러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북한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뉴욕타임스 등 일부 언론들은 이 같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새로운 금지선(Red Line)을 설정한 것이라는 해석을 제기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에서 물러나 북한이 핵무기나 물질을 타국이나 비 국가 단체, 테러리스트들에게 이전하는 것만을 막는 핵 봉쇄 정책으로의 후퇴를 가시화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 동안 금지선을 설정할 경우 오히려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북한의 도발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금지선을 명시하지 않았으나 내부적으론 북한의 핵실험과 그에 따른 핵보유 불용을 금지선으로 삼아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미국의 핵 봉쇄 정책으로의 후퇴는 명분에서나 실질적인 면에서나 실행에 옮겨지기 어렵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경우 미국이 핵무기를 추구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이란에 좋은 선례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이란 핵 문제에 집중하다 북한에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이 같은 결과는 감당하기 어려운 실패이다. 북한의 핵 보유가 동북아에서의 핵무장 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도 미국이 핵 불용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부시 대통령이 성명에서 핵무기 3자 이전에 대한 경고를 하기 이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약을 재다짐 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전제, “부시 대통령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핵 불용 정책이 유지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미국 등의 대북 제재가 실효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타격을 선택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적 상황이 장기화하면 북한의 핵 보유가 현실로 굳어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