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버츠 시대의 미 연방대법원 미래를 가늠할 새 회기가 2일 열렸다.
미 연방대법원이 윌리엄 렌퀴스트 시대를 보내고 로버츠 대법원장을 맞은 지는 1년이 지났지만, 이번 회기에야 진정한 새 시대가 막이 올랐다고 미 언론들은 흥분하고 있다. 낙태, 소수자 우대 등 미국 사회에서 매우 민감한 이슈들이 이번 회기 중 다뤄질 예정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끄는 연방대법원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연방대법관들의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온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퇴진 이후 연방대법원의 이념 스펙트럼은 5대4로 보수로 기울었다는 평가지만, 이념보다는 헌법을 존중하는 소신에 따른 변화를 기대해볼 만 하다.
연방대법원이 이번 회기에 다루기로 결정한 38건의 사안 중 하이라이트는 부분분만식 낙태 금지에 대한 연방법의 위헌 여부. 낙태할 권리를 인정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낙태 문제를 둘러싸고 가장 첨예한 보혁 대립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주도로 2003년 연방법으로 제정된 부분분만식 낙태 금지법은 12주 이상의 태아를 외과 수술로 낙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2000년 비슷한 내용의 네브래스카 주법에 대해 임신부 건강을 고려하는 예외 조항이 필요하다며 5대4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초ㆍ중ㆍ고 공립학교에서 흑인 학생을 일정한 비율로 유지하고 있는 시애틀과 켄터키주 루이스빌의 인종통합적 학군 정책에 대한 판결은 9명의 연방대법관 중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캐스팅보트를 누가 쥐었는지를 명확하게 가려줄 것으로 관심을 모은다. 역시 ‘역차별’ 비판을 받고 있는 대학입학 전형에서의 소수자 우대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2003년 합헌으로 판결한 적이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두 사례에서 로버츠가 이끄는 연방대법원이 최근의 진보적 판단을 뒤엎고 보수 성향을 명확히 굳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두 사안에서 진보성향의 대법관들의 손을 들어주며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던 오코너의 공백도 대법원 판결을 보수적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판단되고 있다.
동성애 권리와 낙태 문제에서 진보적 입장을 지켰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행보도 주목거리다. 오코너 이후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대법관으로 평가되는 그가 새로운 이념적 균형추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번 회기에는 대기업의 이해가 걸린 사건도 17건이나 돼 산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특히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가 폐암으로 사망한 흡연 피해자 유족에게 7,950만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가로 물도록 결정한 하급심 평결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심리키로 결정해 미 기업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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