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8월까지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간 외국 자본의 규모가 92억6,400만 달러에 이른다. 1992년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이후, 가장 많은 외국자금이 유출된 지난 해(24억3,000만 달러)와 비교하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 수 있다.
외국자본이 이탈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경제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이다. 원자재가격 상승과 환율하락으로 수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된 데다, 내수시장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으로 론스타가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나, 미사일 발사로 북미관계가 냉각되는 등 시장을 둘러싼 상황이 악화된 것도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하지만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다소의 위험은 무릅쓰는 자본의 속성을 감안하면, 외자 유출의 또다른 원인으로 투자를 가로막는 투자환경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이닉스의 좌절이 관심을 끈다. 하이닉스는 경기도 이천에 13조5,000억원을 들여 공장을 증설하려고 했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막혔다.
주변에는 이미 공장과 열병합발전소가 들어서 있는데도, 해당지역이 단 한차례도 공장증설을 허용하지 않았던 ‘자연보전권역’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이닉스는 이천에 짓지 못한 300㎜ 웨이퍼 공장 준공식을 10일 중국 장쑤성 우시시에서 열 예정이다.
그러나 외자 유출이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일 수는 없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회장은 최근 “한국은 투자로 커 온 나라인데, 우리 기업들의 투자는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것이 없다. 투자할 곳이 없다지만, 그럴수록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장을 위한 투자 대신 경영권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에 38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 붓는 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이 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전성철 경제부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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