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한 영어회화 학원이 문을 열었다. 취업 준비생과 대학생 직장인 등 성인이 대상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학원 측이 “교재 내용을 미리 외워오지 않으면 수업은 없다”며 예습 없이 찾아온 수강생을 ‘박대’했기 때문이다.
첫 수강생 27명 중 17명은 “이런 곳이 다 있느냐”며 항의하면서 다음달 등록을 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직원이 대표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러면 망합니다.” 잉글리쉬 채널㈜ 이건용 대표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빨리 망하는 게 오히려 우리가 사는 길일 수도 있어요.”
당장의 이익을 내기 보다 양질의 콘텐츠로 장기 교육에 매달린 이 대표의 ‘뚝심’은 서서히 결실을 맺었다. 잉글리쉬 채널이 서서히 제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원어민과 1대 1로 회화 수업을 한 후 수강생의 약점을 파악해 처방을 내리는 ‘1대 1 클리닉 시스템’, 오고 싶을 때 아무때나 올 수 있다는 ‘수업 자율 예약제’ 등이 입소문을 탔다.
3년여 후, 학원은 13개로 늘었고 수강생은 4,000명을 넘어섰다. 우즈베키스탄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현지인 대상의 분원도 열었다. 이 대표는 “외형적 발전보다도 ‘내가 생각한 영어교육방식이 많은 사람을 통해 입증됐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영어를 ‘피아노 배우듯’ 해야 한다”고 말한다. 눈으로 악보를 읽는 연습만으로는 피아노 실력이 늘지 않듯, 실제 건반을 두드리지 않고는 피아노를 잘 칠 수 없다는 논리다. 회화학원도 그런 개념과 맞닿아 있다.
‘연습은 집에서(집이 여의치 않으면 학원 자습실에서), 레슨은 학원에서’다. “바쁜 직장인이 보통 일주일에 다섯 번 있는 회화수업에 몇 번이나 갈 수 있겠어요. 그리고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헐레벌떡 시간 맞춰서 들어간다고 해서 그 수업, 효과가 있을까요?”
이 대표는 최근 토플 토익 등 영어공인시험에서 ‘말하기’ 영역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에 대해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십수 년을 영어 공부하고도 외국인과 몇 분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처지에 ‘고득점’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지적이 그 동안 수 없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말하기는 지식이 아니라 단순 기술에 불과하다”며 “머리 속 말을 입 밖에 내뱉어 완성할 수 있는 길은 꾸준한 연습과 반복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5월부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산하 영어평가방식개선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위원회는 대학 교수와 현장 교사, 정부 관계자 등 각계의 내로라하는 영어 전문가 20여명이 모여 학교 현장에서의 영어 교육 개편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벌이고 있다.
비즈니스 영어교육기관 전문경영인(CEO)으로는 이 대표가 유일하다.
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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