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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계 대부 이영노 박사, 70년 연구 집대성 새 식물도감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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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계 대부 이영노 박사, 70년 연구 집대성 새 식물도감 펴내

입력
2006.10.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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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물학계의 대부 이영노(86) 박사가 역저 '새로운 한국식물도감'을 펴냈다. 70여년 동안 연구하며 모은 자료를 2권에 나눠 실은 것이다. 책에는 한반도에 나서, 알아주는 이의 눈에 띈 거의 모든 식물(총 197과 4,157종)이 사진ㆍ해설로 수록돼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동숭동에 있는 한국식물연구원을 찾았을 때 그는 며칠 전 찍었다는 '한강물억새' 슬라이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책 출간의 감회를 물었다.

"욕심에 차진 않지만 이번 것은 웬만큼 완벽을 기했다는 느낌이요. 먼저 냈던 책(1996년 '한국식물도감')에 누락된 것 죄다 실었고, 양치식물까지 넣었으니까 뿌듯해요." 하지만 그는 이번 책 원고를 보낸 뒤, 그러니까 최근 1년 사이에 소백산 등지서 2종의 '새로운 녀석들'을 찾아냈다고 했다.

"아직 이름도 안 지었고, 국내 학계에 보고도 안 한 것들이요." 새로 찾은 종은 연구원지를 통해 학계에 먼저 소개하고 기회가 닿으면 책 개정판에 넣을 계획이다.

식물학자로 살면서 그는 지금까지 150여 종의 꽃과 풀을 찾아 이름을 주었고, 기존 식물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밝혀 개성을 살려준 것이 250여 종에 이른다. "동강할미꽃 태백기린초 태백바람꽃 노랑무늬붓꽃… 이것 봐요, 이게 동강고랭이라는 꽃이요." 새 식물을 발견하는 순간의 감흥을 묻자 그는 수줍게 웃으며 혼잣말처럼 "조~옷지" 했다.

어느새 푸근한 평어로 어투를 바꾼 그는 생의 이력을 구수하게 들려줬다. 어릴 적 꿈이 서도(書道)였다는 것, 교사 생활을 하다 서울대 식물학과에 편입학해 제자와 함께 강의를 듣던 추억, 학부 재학 중 중앙대 생물학과 주임교수로 취직했던 이야기, 미 캔자스대학서 전무후무하게 9개월만에 석사 학위를 딴 이야기, 도쿄대에서 억새와 인연을 맺고 박사학위 논문을 쓴 내력, 구비마다 자신을 격려하고 이끌어준 스승들에 대한 기억….

그는 한라산만 250차례 올랐고, 남쪽 산은 안 오른 산이 거의 없다. 북쪽도 묘향산 금강산 등 큰 산은 훑었고 백두산은 무려 20차례나 등반했다.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달라고 하자 그는 젊은 시절 산에서 고사리를 캐다 미끄러져 2주간 병원 신세를 진 일을 꺼냈다.

"잠시 기절했는데 깨어나자마자 칼로 바위 표면을 긁어서는 연구실에 와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봤지. '염주말'이었어. 그래서 '염주말이 핀 바위는 미끄럽다'는 사실을 알아낸 거야. 당연히 내 책에도 실었고." 재미난 얘기가 아니라 지독한 얘기라고 하자, 그는 "미치다시피 했지.

또 미칠 만큼 좋았고"라고 말했다. 요즘도 틈만 나면 산야를 누비는 그는 "추석이 오기 전에 장억새 물억새 검억새 흰억새 씨앗을 보러 소백산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실의 한 층 아래는 사진ㆍ표본 자료실. 이번 도감 사진 가운데 약 90%가 그의 작품일 정도로 사진 솜씨도 전문가 수준이다. 연구실을 나오면서 아껴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왜 식물이 좋으세요?" "좋으니까 좋지! 꽃도 아름답고…. 다른 거 없어, 아름다우니까 좋은 거야. 자네도 기자 그만하고 이거 해, 좋아"(다시 웃음).

글ㆍ사진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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