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보나 지음ㆍ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발행ㆍ1만8,000원
배우나 예술가가 아니어도 삶을 연기하는 사람은 흔하다. 하지만 그가 죽음마저 연기했다면, 그의 생은 더 이상 ‘연기’라 부르기에 적절치 않을 것이다. 죽음만큼 진정성으로 가득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소설만큼 극적인 삶과 죽음으로 프랑스 문단의 전설이 된 로맹 가리(1914~1980)의 생애가 전기 작가 도미니크 보나의 손끝에서 생생하게 부활했다.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의 분신을 창조해 평생 한 번밖에 수상할 수 없는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받으며 프랑스 문단을 희롱한 전무후무한 기록, 편모 슬하의 가난한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외교관과 소설가로 세계를 종횡무진하기까지의 야망과 카리스마,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미녀배우 진 시버그와의 불꽃 같은 사랑과 자살로 이어진 비극적 결말 등 생애 자체가 소설이었던 그다.
31세 되던 1944년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하고, 11년 뒤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받는 등 문학적으로 승승장구한 그였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사건은 ‘매너리즘에 빠진 거장’이라는 비판에 맞서 에밀 아자르라는 ‘자유로운 영혼의 신인’을 창조해내며 일으킨 스캔들이다. 그는 장막 뒤에서 자아를 쪼개 만든 에밀 아자르를 연기하며 ‘자기 앞의 생’(1975)을 발표, 두 번째 공쿠르상을 수상했고, 저자의 정체를 밝히라는 아우성을 비웃듯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번갈아 소설을 발표하며 프랑스 문단을 한껏 조롱했다.
그러나 아내였던 진 시버그의 자살 1년 후인 1980년 12월 2일. 그는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는 선언과 함께 자신이 에밀 아자르임을 밝히는 유서를 남긴 채 입안에 총구를 넣은 후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너무 소설적이어서 되레 통속적인 그의 삶은 많은 작품에 낭만적 후광을 드리웠지만, 르 피가로 등 일간지 문학담당 기자였던 저자는 저널리스트 특유의 엄정함과 면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세속적 욕망과 창조적 열정이 충돌했던 자연인 로맹 가리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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