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기밀 유출자 색출을 위한 이사진 통화내역 불법조사 스캔들로 28일 컴퓨터업체 휴렛 팩커드(HP) 전ㆍ현직 경영진 3명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하원 에너지ㆍ상무위원회는 이날 HP 최고경영자(CEO)이자 현직 이사회 의장인 마크 허드, 전 이사회 의장인 패트리샤 던, 수석 변호사 앤 배스킨스 등 3명을 출석시켜 HP가 고용한 사설 탐정들이 이사 및 출입기자들의 통화기록을 빼내려고 통신회사에 본인을 사칭해 전화를 거는 이른바 ‘프리텍스팅’ 방법을 동원한 것을 알고 있었는지 집중 추궁했다. HP가 고용한 사설 탐정들은 통화기록 조회는 물론 쓰레기통을 뒤지고 기자들에게 추적 기능이 숨겨진 가짜 이메일을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은 특히 HP 보안 담당자 중 한 사람인 빈센트 나이가 올해 2월 HP의 최고 윤리책임자인 토니 젠틸루치에게 보낸 이메일을 들이대며 경영진의 사전 인지 여부를 다그쳤다. 나이는 회사측이 다수의 임원, 기자, 직원들에 대한 통화기록을 요청한 데 대해 이메일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매우 부도덕하고 아마도 불법적이라고 본다”고 적었다.
허드는 광범위한 개인정보 침해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CEO로서 사과했다. 그러나 자신은 이런 방법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던은 거의 하루 종일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이 방법을 고안한 것은 내가 아니며, 이 사건에 대해 내게 개인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변했다.
또 “나는 (불법 여부에 대한 판단을) 앤 배스킨스에게 의존했고, 배스킨스는 윤리 담당 임원인 케빈 헌세이커에 의존했다”면서 책임을 떠넘겼다. 이날 HP 법률자문역을 사임한 배스킨스는 아예 수정헌법 5조에 근거한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면서 청문회장에서 증언을 거부했다. 그는 청문회 전에 개인 변호사를 통해 “내가 알고 있던 조사방법은 적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원들은 던은 물론 다른 관련 직원들도 개인의 동의 없이 통화내용을 조사하는 게 불법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일부 의원들은 이번 사건을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엔론 분식회계 사건과 비유하며 비판했다.
청문회와는 별도로 연방 및 캘리포니아주 검찰은 HP의 내ㆍ외부 조사원들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수사 중이다. 캘리포니아주 빌 로키어 법무장관은 HP의 내부자들과 사설 탐정들을 기소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이미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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