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법인화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교육인적자원부가 29일 ‘국립대 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마련, 국립대 법인화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국립대를 특수법인으로 바꾸는 절차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국국공립대교수연합회 등 교직원 단체들이 이날 열릴 예정이던 법안 관련 공청회를 실력으로 저지하는 등 출발 단계에서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커지는 국립대 교수들의 반발도 교육부로서는 풀어야 할 숙제다.
대학 자율권 보장
특별법안의 골자는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은 계속하되 대학이 인사 행정 재정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실질적인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결과는 대학 스스로 책임지도록 했다. 학교 운영을 자체적으로 하되 잘못해 파산 직전에 이르더라도 정부는 간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학에 철저한 ‘자립’을 요구하고 있다.
총ㆍ학장은 이사회에서 선출하고 임기는 4년, 연임이 가능하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출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으며 회계는 법인회계로 단일화 했다. 또 교육연구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수익사업을 할 수 있고 수익금은 전액 학교운영에 충당토록 했다.
신분 문제의 경우 고용 승계가 보장된다. 교직원은 법인 전환 후 법인 소속으로 고용을 이어가도록 했다. 심의기구인 대학평의원회는 교원, 직원, 학생 등으로 구성하되 운영과 구성은 정관에 정한다.
서울대 압박용?
특별법안이 당장 적용될 곳은 2009년에 문을 여는 울산 국립대와 국립대로 전환하는 인천대다. 이들 대학은 법인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특별법안의 내용이 그대로 반영될 전망이다.
문제는 서울대다. 교육계 주변에서는 “교육부가 서울대를 겨냥해 법안을 만들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법인화에 느긋한 서울대를 압박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서울대가 움직여야 국립대 법인화가 탄력을 받는 것은 사실”이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정작 서울대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는 이장무 신임 총장 취임 이후 법인화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다루기로 해 교육부를 애타게 하고 있다. 전임 정운찬 총장이 “법인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태스크포스팀까지 꾸려 법인화 세부 연구보고서를 내놓던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서울대는 13일 장기발전계획위원회 산하에 법인화 분과를 만들었다. “법인화 추진 의지를 보여 달라”는 교육부 독촉이 거세지자 시늉만 낸 셈이다. 지금까지 한차례의 회의도 열지 않았다. 서울대 고위관계자는 “법인화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장기과제로 추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대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간을 두고 법인화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의미다.
국립대 교직원들의 반발
이날 국립대 법인화 특별법안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인 공청회가 무산됨으로써 교육부는 추진에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됐다. 신분 불안 등을 우려한 국립대 교직원들의 반발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국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 전국교수노조, 전국대학노조,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국립대 법인화 저지와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인화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국공립대 법인화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공적 책임을 포기하는 정책”이라며 “법인화가 되면 등록금이 대폭 인상되고 대학 서열화가 굳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조만간 공청회를 다시 열고 대학 및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특별법안을 보완한 뒤 입법예고 등을 거쳐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원하는 대학에 한해 특수법인으로 전환토록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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