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펀드의 규모가 급증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펀드의 의결권이 행사되고 있다. 그렇다면 펀드는 과연 기업경영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을까. 펀드가 기업경영에 개입하게 되면 과연 기업가치가 반드시 좋아진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보다 먼저 펀드나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경험한 서양에서는 펀드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우선 펀드가 적극적으로 주주권리를 행사하게 되면 투자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좀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 기업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특정 펀드나 운용회사가 행동을 하는 동안 수수방관하던 다른 투자자들이 주가상승의 과실을 함께 누리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즉 행동하지 않고 지켜보는 펀드들이 열심히 행동한 펀드들과 함께 무임승차할 때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의외로 펀드가 기업경영에 개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강하다. 펀드매니저는 단기수익률을 선호하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경영행위에 전문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는 마치 기업경영을 장기간 지원할 것처럼 이야기하다가도 언제든지 주식을 매각하고 떠나가 버린다. 반대로 펀드매니저는 오랫동안 주식을 보유하고 기업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싶어도 펀드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구하게 되면 주식을 매도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외국에서는 펀드매니저는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 보다는 ‘침묵의 동반자’라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이 비효율적인 경영과 낙후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조용히 주식을 매각하고 떠나면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한국 펀드업계에서는 날로 늘어나는 주식펀드의 규모로 인해 펀드의 의결권 행사가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기업 경영구조를 선진화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반가운 소식이지만, 한편으로 펀드의 경영권행사가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무 소란스럽게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우려된다.
펀드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실 펀드매니저가 힘들게 기업경영에 깊숙이 개입하기보다는 좋은 기업 주식을 많이 매수하여 높은 수익률을 올리면 된다. 주식펀드의 가입자 역시 펀드매니저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으면 펀드를 환매하고 떠나면 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말로 쿨(cool)한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는 말이다.
외국에서도 기업경영권에 개입하여 다른 펀드보다 수익률을 높이는 펀드는 많지 않다. 또 이런 투자전략을 사용하는 펀드들은 규모도 작고, 투자위험과 비용이 높으므로 일반 투자자들이 가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대부분의 주식펀드들은 기업경영권에 개입하지 않고 단지 경영의 결과만을 지켜보며 매수와 매도여부를 판단한다. 앞으로도 이런 식의 펀드운용은 계속 될 것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기업가치를 높여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은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의 몫이다. 펀드매니저들이 기업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반드시 대세는 아니다.
한국펀드평가 대표 우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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