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도 잇신(犬童一心)은 요즘 국내 일본영화 팬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감독이다. 2004년 개봉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는 잔잔한 흥행 바람을 타고 4만명의 관객을 모았고, 국내 극장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2005년 두 번이나 재개봉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메종 드 히미코’는 1월26일부터 10개 내외의 극장에서 5개월 가까이 장기 상영하며 9만 관객을 동원, 일본영화의 성공 모델을 제시했다.
28일 개봉하는 ‘금발의 초원’(2000)은 10편을 만든 이누도 감독의 연출 이력 중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이 잇달아 흥행에 성공한 데 힘입어 뒤늦게 한국 극장가를 찾았다.
몸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아르바이트생 나리스(이케와키 치즈루ㆍ池脇千鶴)는 80세의 닛포리(이세야 유스케ㆍ伊勢谷友介)를 맡게 된다. 심장병을 앓고 있으며 괴팍하기로 소문난 닛포리는 나리스를 대면한 순간부터 살갑게 대한다. 그가 현실을 잊은 채 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스무 살로 돌아갔다는 착각을 하고 있어서다. 더군다나 나리스는 그의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뒤흔든 옛 연인을 닮았다. 닛포리는 조심스레 자신의 달뜬 마음을 내비치고, 나리스는 조금씩 마음을 연다.
‘금발의 초원’은 해외 토픽감이 될만한 기이한 사랑의 밑그림에 삶의 아름다움을 포갠다. 눈 부신 젊음에 대한 예찬과 가슴 뻐근한 추억으로 스크린을 누비면서 노인 문제를 슬쩍 건드린다. 시간의 무게를 이겨낼 수도, 찬연한 과거의 환희를 지울 수도 없는 모순된 삶의 모습도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구현해낸다.
더불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풀로 가슴을 베듯 아릿한 서글픔과 함께 훈훈한 미소를 만들어낸다.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를 대상으로 따스한 유머와 재기 넘치는 연출력을 선보였던 이누도 감독의 풋풋한 열정이 스크린에서 돋을새김을 한다.
오시마 유미코(大島弓子)의 동명 순정만화를 옮겼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 스폰지하우스에서만 상영한다. 12세.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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