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야 의원들이 주요그룹 총수를 비롯,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국감 증인으로 채택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들 기업인 중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그룹오너와 신헌철 SK㈜ 사장, 김신배 SKT텔레콤 등 국내 간판급 최고 경영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26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한나라당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을 각각 부당내부거래와 대한생명 인수문제로 증인채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증인채택여부는 27일 중 결론날 예정이다.
법사위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등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학수 부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일부 의원들은 또 이동통신사 가격 담합 문제와 관련해 김신배 SK텔레콤 사장과 조영주 KTF사장, 정일재 LG텔레콤사장 등 3개 이동통신사 최고경영자(CEO)의 증인 채택을 검토하고 있다. 또 신헌철 SK㈜사장, 명영식 GS칼텍스 사장, 사미르 에이 투바이옙 에쓰 오일 CEO,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 등 정유업계 최고 경영자 4명도 정유사간 유가 담합 및 폭리 의혹 등으로 증인 채택이 추진되고 있다.
총수나 대표가 ‘증인후보’로 거론되는 기업은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증인채택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모든 인맥을 동원해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일부 의원들은 아직도 대기업 총수를 국회에 불러냈다는 사실만으로 ‘한건’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증인문제가 재계에 대한 정치인들의 압박수단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총수가 소환 대상으로 거론된 A그룹 관계자는 “국회 의원들이 정작 증인을 소환해 놓고 본질과 관련 없는 문제로 망신주기식 추궁을 하거나 증인들의 증언은 듣지도 않은 채 자기 말만 하며 호통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런 행태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나아가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의 대표적 기업 총수들이 대거 국감장에 나왔을 때 기업 이미지 손상은 물론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 정치권이 증인채택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B그룹 비서실의 한 임원은 “최고 경영자들이 국회에 불려 가면 무슨 큰 비리라도 저지른 것처럼 비춰져 임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국감 증인 명단에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타격”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국회의 국정감사 권한은 존중해야 하지만 재판에 계류중이거나 수사중인 사안, 심지어 사법적으로 끝난 사안과 관련해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세우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굳이 최고 경영자를 부르지 않고도 담당 임원이나 자료제출을 통해 얼마든지 충실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데도 최고 경영자 소환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라며 “기업인의 증인 채택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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