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미신고시설 이유 중증장애인들 보금자리서 "나가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미신고시설 이유 중증장애인들 보금자리서 "나가라"

입력
2006.09.26 23:52
0 0

"규정 타령만 하면서 멀쩡한 장애인 복지시설을 폐쇄하라니…."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 장애인 복지시설 '새롬의 집'에 살고 있는 중증 장애인 15명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미신고시설이라는 이유로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야 할 위기에 놓인 탓이다. 남양주시는 다음달 1일까지 나가야 한다고 통보한 상태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한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추석(10월 6일)을 맞아야 한다.

2004년 4월 이곳에 정착한 이들은 한가족처럼 지냈다. 문기순(53ㆍ여) 원장은 당시 빚을 내 1,000평(대지 600평ㆍ밭 400평) 부지의 80평짜리 근사한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들과 별탈 없이 살아왔다. 장애인들도 밭에서 야채를 가꾸기도 하면서 이웃 주민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그런데 집을 떠나라고 하니 막막할 따름이다. 정신장애 2급 정모(37ㆍ여)씨는 갈 곳이 없다. 기초생활수급권자에 해당되지 않아 정부가 운영하는 무료 시설에 들어갈 수도 없다. 정씨는 "이곳은 내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라며 "아무 걱정없이 잘 지냈는데 왜 떠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정신장애 3급 최모(69)씨도 막막하다. 최씨는 "웃고 즐겨야 할 한가위를 앞두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한숨만 내쉬었다. 수급권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체장애 1급 오모(34ㆍ여)씨는 "다른 시설에서는 이처럼 세심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걱정은 지난해 7월 남양주시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이기 때문에 신고시설로 전환할 수 없다"며 딴지를 걸면서 시작됐다. '법'에 그린벨트 안에 허용되는 시설은 고아원, 양로원, 종교시설만 명시돼 있을 뿐 장애인 시설은 없다는 이유다.

문 원장은 그린벨트 안에 있는 건물이지만 건축물 대장에 '교육연구 및 복지시설'로 분류돼 있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건축법상 장애인 시설은 노유자 시설(아동, 노인 기타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시설)의 일부이고, 노유자 시설은 교육연구 및 복지시설에 속하기 때문에 용도를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 장애인 시설이 자연을 더 훼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복지시설과 다르게 취급하는 이유도 납득할 수 없다.

수 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공무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건설교통부는 "장애인 시설 관련 업무는 지난해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갔다"며 "남양주시와 상의해 보라"고 퉁 쳤다. 남양주시는 "상급기관이 만든 규정에 따라 집행만 할 뿐"이라고 발뺌했다.

보건복지부는 규정의 미비점을 인정했다. 다만 "지난해 그린벨트 안에 장애인 시설도 허용하도록 건교부에 법률 개정안을 냈지만 검토과정에서 반려됐다"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문 원장은 시설 이전비용을 알아보았다. 남양주시가 밝힌 지원 액수는 1억9,000만원에 불과했다. 장애인복지법(1인당 거주 면적 5.5평)에 따라 15명이 거주하는 80여평의 건물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땅과 건축비를 감안하면 최소 2억5,000만원은 필요하다. 새롬의 집을 꾸미는 데는 5억원이 넘게 들었다고 한다.

문 원장은 "시설을 양성화한다는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장애인들을 음지로 내몰고 있다"며 "장애인을 차별하는 불합리한 법규를 시정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