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법사상 최초의 ‘공판중심주의 재판’은 지난해 1월 기소된 강동시영아파트 재건축조합 비리 사건이었다. 그러나 법ㆍ검 감정싸움으로 촉발된 이 재판 사례는 제도가 잘못 시행될 경우 생길 수 있는 전형적 문제점들을 보여줬다.
당시 검찰은 사건 핵심인물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3차례나 기각된 것에 격분, 재판초기에 공소장을 제외한 일체의 수사기록 제출을 거부했다. 피고인, 참고인 등의 진술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던 재판부는 다른 재판은 미뤄둔 채 월ㆍ수ㆍ금요일에 연이어 재판을 잡으며 강행군을 했다. 결국 보통 3~5회 공판을 하고 선고를 하는 다른 사건들과 달리 이 사건은 23회 공판, 25명의 증인신문을 거쳐서야 선고를 할 수 있었다.
또 검찰은 재판 초기에 피고인측의 증거인멸 시도를 방지한다며 증인신문 사항도 사전에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변호인이 방어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제출하는 소동까지 있었다.
재판이 끝난 뒤 재판장은 “선입견 없이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쟁점이 아닌 부분까지 법정에서 다루다 생긴 비효율성은 되새길 만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2000년부터 “재판을 제대로 해보자”며 공판중심주의를 검토, 2003년 이 제도 본격 도입을 선언했다. 낯선 제도로 인해 별로 활용되지 못했던 이 제도의 활성화에 적극 나선 것은 대법원이었다. 대법원은 2004년 12월 검찰 수사과정에서 자백을 했다가 재판에서 조서 내용을 부인한 보험사기 사건에서 기존의 판례를 바꿔 “조서에 손도장을 찍은 것만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해 검찰의 반발을 샀다 .
또 지난해 5월에는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검찰의 수사기록 증거능력을 배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확정하자, 검찰은 전국평검사회의를 열며 집단반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이 이날 증거서류분리제출을 선언했지만 양측의 뿌리깊은 갈등으로 인해 공판중심주의를 놓고 양측의 아전인수격인 동상이몽이 우려되고 있다. 강동시영아파트 사례가 재연될 수 있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판중심주의를 할 경우 검찰은 수사기법을 더 개발해야 하고 법원 역시 재판장기화 등 부담이 크다”며 “그러나 이는 국민의 공정한 재판권을 위한 것인 만큼 양측이 양보하며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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