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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공판중심주의 실현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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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공판중심주의 실현이 핵심이다

입력
2006.09.2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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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힘겨루기인가.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보라고 가리킨 달은 외면한 채 손가락이 더럽다고 시비 거는 격이다. 변협은 말꼬투리를 잡으며 사태를 정치적 이슈로 몰고 간다. 변호사 시절의 수임료 액수를 들먹이며 자진사퇴하라고 압박한다. 우리가 법원의 들러리에 불과하냐며 국민의 동정심에 기댄다.

검찰총장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유감표명으로 조직 내부의 불만을 다독인다. 그러면서 공판중심주의 실현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국민의 재판참여제도, 로스쿨 도입 등 참여정부의 사법개혁에 저항하며 핑계거리를 찾던 중 호재를 잡은 듯 연일 맹공이다.

검찰이나 변협도 잘 알고 있듯이, 사태의 본질이자 대법원장의 진심은 법원 내부를 향한 사법개혁에 대한 관심과 인식변화의 촉구다. 그러면서 검찰과 변호사에게 공판중심주의의 실현에 적극 참여하고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직전에 발표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사법개혁안이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진 가운데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방법원을 순시하는 자리에서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사법부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사법개혁에 냉담한 법원 내부에 와 닿도록 약간의 거친 표현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번 사태는 공판중심주의의 실현이 얼마나 중요한 개혁과제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대법원장 발언 문제를 둘러싼 법조직역의 갈등은 조서중심의 재판관행에서 탈피하여 공판중심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대법원장이 누구를 향해 어떤 의도로 발언했고 발언의 전체적인 맥락과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발언 당시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언론을 통해 전달된 문자만 보고 들으며 그 표현을 문제 삼는 것이 조서재판이 안고 있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공판정에서의 증거조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수사서류까지 보면서 조서에 의존해 심증을 형성하는 관행에서 벗어나라는 취지의 발언일 텐데 문자화되어 전해진 표현만 뜯어보면 오해될 소지가 있기도 하다.

그 오해의 가능성이 바로 조서재판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공판정에서 진술하는 피고인의 태도와 표정, 진술내용, 방청객의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심증을 형성해야 사법정의가 실현될 수 있음과 허울뿐인 공판절차를 살려내야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되는 공정한 재판이 된다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이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법원장의 발언을 법조인의 눈이 아니라 수사를 당해보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해 보았던 사람들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공판정에서가 아니라 판사실에서 조서만으로 판단하는 재판을 경험한 피고인이나 방청객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이 고해성사같이 진실을 담보할 수 있는 수사 환경이었는지 피의자 입장에서 되돌아보아야 한다. 조서로 내밀고 전화로 부탁하거나 만나서 은밀히 얘기하려 하고 각종 인연을 들먹이기도 하는 것이 국민이 가끔 듣고 있는 수사와 재판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눈물과 핏물이 뚝뚝 떨어지게 한 수사와 재판은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런 수사와 재판이 만에 한 건이라도 있다면 그것 때문에 사법에 대한 불신이 싹틀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 파문이 한바탕 소동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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