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하에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ㆍ1534~1582)가 뜨겁게 회자됐다면, 다음 후보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ㆍ1830~1859)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후 세대로서는 처음으로 정권을 거머쥔 아베 신조(安倍晋三) 차기 총리가 가장 존경한다고 밝힌 역사 인물이기 때문이다.
● 日 우익세력의 원조
아베씨와 같은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인 요시다 쇼인은 에도(江戶)시대 도쿠가와(德川)막부 말기의 급진 사상가이자 교육자이다.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는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을 주창한 그는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위해서 라면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행동파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의 허가없이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에 격분, 막부 고관의 암살을 기획하다 발각돼 참수당했다. 그의 나이 29세 때로, 그는 죽음의 목전에서도 '야마토 다마시(大和魂ㆍ일본혼)'를 외쳤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일본 우익세력의 '원조'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요시다 쇼인이 존경받고 있는 배경에는 그가 길러낸 제자들의 힘도 큰 것 같다. 막부의 쇄국주의 정책아래서 밀항을 통한 외국유학을 시도하다 실패한 그는 고향에서 숙부가 만든 사학(私學)인 쇼카손주크(松下村塾)를 운영하는데 힘을 쏟았다.
정한론(征韓論)자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 함께 '메이지(明治)유신 3걸'로 이름을 날린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군부 실력자로서 총리까지 오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한국병합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막부타도의 선봉이었던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등은 대표적인 그의 제자들이다.
신분의 귀천을 묻지않고 학생을 받아들였던 그는 존왕양이를 위한 극단적인 개혁을 설파해 주목 받았다.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인재육성을 위해 만든 마쓰시타세이케이주크(松下政經塾)는 이 곳을 모델로 한 것이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과 인물 됨, 그리고 그 제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베씨가 왜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국수주의자였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정치ㆍ사상적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아베씨에게는 그야말로 큰 스승 같은 존재일 것이다.
● 그를 버린 정치인들
재미있는 것은 존왕양이를 앞세우며 방화와 암살 등 테러를 일삼았던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 훗날 커다란 정치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요시다 쇼인을 버렸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외국과 정말로 싸우고 싶으면 나라를 개방하고, 해군을 키워야 한다"고 설파했던 사상가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ㆍ1811~1864)과 만난 이후 외국 문물의 습득을 위해 유학을 떠났던 이토 히로부미가 좋은 예이다. 나라와 인종을 떠나서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김철훈 도쿄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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