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찾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서울시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한강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강의 지천(支川)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물론, 자전거도로를 한강과 연결시키고 테마공원을 조성하는 등 한강과 관련된 대형 프로젝트를 쏟아내고 있다.
자치단체들은 특히 ‘청계천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이 친환경 정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각광 받으며 경제적 부가가치까지 창출해 내자 서울시는 물론 각 구청들이 경쟁적으로 한강과 지천 등의 개발에 팔을 걷어 부친 것이다. 서울시의 한강개발은 오세훈 시장이 앞장서 이끌고 있다. 한강을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브랜드’로 만들겠다고 공약한 오 시장은 금명간 한강종합개발의 청사진을 발표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최근 녹번ㆍ도림ㆍ도봉ㆍ봉원ㆍ불광ㆍ우이천 등 6개 지방하천의 복원에도 착수했다. 2008년까지 1,128억원의 예산을 들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하천은 대부분 한강과 연결된 지천이다. 또 강남구는 내년까지 양재천에 이어 탄천을, 송파구도내년까지 성내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한 뒤 주변을 공원화 할 방침이다.
유수지(홍수 조절용 저수지) 주변개발도 활발하다. 송파구는 지난해 잠실과 탄천유수지에 축구장 배드민턴장 등을 만들었다. 강남구는 내년 6월말까지 177억원을 들여 대치유수지에 국제규격의 인조잔디 축구장과 인라인스케이트장 등 10여개 시설이 들어서는 테마체육공원을 조성키로 했다. 양재천, 탄천 등과 연결시켜 활용도도 높일 계획이다. 강동구는 한강시민공원 암사지구 인근 선사유적지를 ‘대표상품’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2010년까지 484억원을 투입해 유적지 인근 3만여평을 역사생태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자전거도로망도 촘촘히 짜여지고 있다. 서울에는 이미 한강을 중심으로 629㎞의 자전거도로가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서울시는 2010년까지 385㎞를 더 만들어 총 구간을 1,014㎞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지금도 광진교~구리시(1.84㎞), 암사동~하남시(4.12㎞) 구간을 자전거도로로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경기 고양시는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 자유로를 타고 가양대교를 잇는 자전거ㆍ인라인스케이트 전용도로를 2010년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이 도로가 완성되면 일산~분당, 일산~구리, 일산~하남까지 왕복 100㎞를 넘는 한강 자전거 여행길이 열리게 된다.
송파구도 구 외곽을 도는 25㎞의 자전거 외곽순환도로를 조성한데 이어 2007년까지 잠실종합운동장~한강진입로와 지하철 5호선 개롱역~성내천 구간까지 개통할 예정이다. 동작구도 내년까지 도림천 (보라매공원~신대방역~구로디지탈단지역)에 1.5㎞의 자전거 도로를 조성할 계획이다. 도로가 완성되면 보라매공원에서 도림천을 따라 한강까지 다다를 수 있다.
한강과 인접하지 않은 자치구 역시 한강과 연계한 자전거도로 조성에 적극적이다. 중구는 11월까지 남산 국립극장~청계5가 구간에 자전거도로를 놓는다. 기존 한남대교 북단~남산국립극장 구간과 연결돼 한강~남산~청계천에 이르는 자전거도로가 완성된다. 도봉구도 우이천과 중랑천을 잇는 7㎞의 자전거도로를 조성, 한강~북한산을 연계하는 레저코스를 개발중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웰빙도로’가 하루가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한강개발계획을 총괄하는 도심개선기획반 이제원 반장은 “시민들에게 웰빙공간을 제공하고 나아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한강개발의 취지”라고 말했다.
■ 산업의 젖줄에서 웰빙 요람으로
지난 주말 아침 서울 반포 한강시민공원. 인라인 스케이터 10여명이 무리를 지어 자전거도로를 질주한다. 30초나 지났을까. 그 뒤를 동호인으로 보이는 20여명이 자전거를 타며 휙 지나간다. ‘떼거리 잔차질’(무리 지어 자전거 타는 일)이다. 잠시 후, 이번에는 한강을 달리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들 차례다. 사진기를 들이대니 환호성을 지르며 포즈까지 취해준다.
자전거족과 인라인 스케이터, 마라토너들은 좁은 도로에서 절묘하게 공생한다. 최근엔 ‘타인을 위한 작은 배려, 한강사랑의 시작입니다’라는 구호를 내세운 ‘한강 에티켓’ 운동도 시작됐다. 강변쪽 산책로에는 조깅이나 산보를 하는 지역 주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철을 잊은 유채꽃이 만발한 중랑천변, 코스모스로 뒤덮인 경기 구리시의 한강 둔치 역시 가을의 정취를 맛보려는 어른들과 생태체험을 나온 아이들로 붐빈다. 조기축구와 수상스포츠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들까지 가세해 한강은 항상 만원이다.
1970, 80년대 경제기적을 일궈냈던 산업의 젖줄 한강은 이제 서울시민들의 웰빙과 레저의 요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소장 진익철)에 따르면 1986년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한강시민공원이 첫 선을 보일 당시 이용자는 330만명. 그런데 20년 후인 지난해에는 4,821만명이 한강을 찾았고, 12개의 시민공원에선 483회의 각종 행사가 진행됐다. 매일 1.3회 꼴로 마라톤대회나 축제, 음악회 등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한강을 즐기는 ‘진짜 주인’들은 이런 이벤트에 오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강 그 자체가 생활의 일부가 돼 버린 지역 주민들이다.
아버지와 함께 한강을 찾은 여고생 이경희(18)양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이 마치 외국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지 않느냐”면서 “시간만 나면 한강에 오고 싶다”고 말한다. 압구정동 주민 강민자(42ㆍ여ㆍ강남구 압구정동)씨에게도 한강 부근에 사는 것은 프리미엄 그 자체다. 그는 “답답한 도시생활에서 5분만에 벗어나 자연 속에 묻힐 수 있는 곳이 한강 말고 어디 있느냐’며 “대다수 동네 주민이 한강에서 운동한다”고 말했다.
평일 아침이면 한강 자전거도로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 이미 5만명을 넘어섰다. 법률신문 기자 윤상원(44)씨는 동대문구 이문동 집에서 서초동 법원단지까지 한강 자전거도로로 3년째 출퇴근하고 있다. 그는 “한강을 달리면서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할 정도로 한강을 사랑한다.
한강은 중랑천과 탄천, 안양천, 양재천 등 지천들까지도 공원으로 바꿔놓았다. 마치 혈관을 따라 피가 돌 듯, 한강과 그 지천들은 서울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웰빙’을 전파한다. 탄천에서 만난 회사원 이모(44)씨는 “강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교통체증’이 날 지경이지만, 한강은 우리가 이제서야 발견한 생활의 보배”라고 말했다
■ 자전거 마니아 가수 김창완씨
가수 겸 MC 김창완(52)씨는 한강 마니아이다. 바쁜 연예계 생활 중에도 틈만 나면 한강을 찾는다. 대개 산악용 자전거(MTB)를 앞세우고 몸에 착 달라붙는 자전거 유니폼을 정식으로 차려 입고 나타나기 때문에 시민들이 잘 몰라본다. 지난 주말에도 자전거동호회 회원들과 소래포구까지 50㎞ 구간을 ‘잔차질’(자전거타기) 하기 위해 반포 한강시민공원을 방문했다.
그의 자전거 이분법은 한강 자전거족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하다. 그에게 날씨는 두 가지이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과 ‘자전거타기에 거지 같은 날’이다. 사람도 두 가지이다. ‘자전거 타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나쁜 사람’.
김씨에게 한강은 여가 공간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매일 아침 자전거로 한강을 깨운다. 아침 7시 서울 서초동 서래마을 집을 나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SBS 목동 사옥까지 21㎞를 자전거로 출퇴근 한다. 그와 함께 한강공원을 찾은 친구 민병윤(53ㆍ사업)씨 역시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이다. 그는 용산구 이태원 집에서 강남구 포이동 사무실까지 출퇴근을 자전거에 맡긴다.
김씨는 7~8년 전 이수교 지역이 공사로 너무 막혀 출근시간이 길어지자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했다. 그는 “한강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생활에 활력이 찾아왔다”며 “운동을 하고 일을 하니 하루가 즐겁고 삶의 여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일부러 운동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니 더욱 좋다는 것이다.
한강 예찬론도 이어졌다. 한강은 위치에 따라 풍경이 다양하게 바뀌는 것도 묘미지만, 도시에서 이만큼 가슴 시원한 개방감을 줄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서울 흑석동에서 살아서 그런지 한강이 너무 좋다”면서 “한강이 너무 훌륭해 별다른 문제점은 없지만 진입로가 불편한 것이 흠”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잔차질’할 시간이 없다는 동료들의 성화에 그는 MTB에 올라 총총히 한강을 밟기 시작했다.
기획 취재팀 고재학(팀장)·이태희·송영웅·안형영기자 news@hk.co.kr
사진부=손용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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