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때 철천지원수로 싸운 두 나라가 함께 만든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프랑스와 독일의 고교 현대사 공동 교과서 《이스투아르/게쉬히테》가 최근 발행됐다.
프랑스어판과 독일어판 공히 이스투아르(프랑스어로'역사')를 게쉬히테(독일어로'역사')보다 앞세운 점이 흥미롭다. 1945년 종전 이후 두 나라 관계사를 평가한 5장을 보니 맨 처음(306쪽)에 사진 네 장을 실었다.
61년 드골 대통령과 아데나워 총리가 엘리제궁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 78년 슈미트 총리와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포도주를 놓고 환담하는 모습, 84년 미테랑 대통령과 콜 총리가 손 잡고 산책하는 사진, 2003년 슈뢰더 총리와 시라크 대통령이 맥주잔을 부딪히며 환히 웃는 모습이다.
■ 근엄한 표정으로 시작해 파안대소로 발전하는 정상들의 모습이 양국 관계의 발전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68년에 두 나라에서 일어난 '학생혁명'과 2003년 양국이 '미국의 이라크 간섭'에 반대한 것을 주요 연표에 포함시킨 것도 눈길을 끈다.
역사적으로 앙숙인 두 나라가 역사를 함께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은 물론 근본적으로 평화와 번영을 함께 할 동반자라는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양국은 63년 엘리제 협정을 통해 동반자 시대를 공식 선언했다.
■ 이후 이 협정에 의거해 설립된 '청소년을 위한 프랑스-독일 공동위원회'를 통해 지난 40여 년간 상호 방문한 청소년이 무려 800만 명 가까이 된다니 양국의 유대가 얼마나 깊고 끈끈한 것인지 짐작할 만하다.
특히 독일은 철저한 과거사 청산을 통해 얻은 주변국들의 신뢰를 토대로 프랑스와 함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유럽경제공동체(EEC)→유럽공동체(EC)→유럽연합(EU)으로 이어지는 유럽 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영국이 독일의 저의와 발전을 의심하고 경계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 영국 프랑스 독일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유럽을 주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한ㆍ중ㆍ일 3국이 떠오른다. 일본은 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롯해 과거사 문제를 아직도 제대로 털지 못하고 있고, 중국은 한일 두 나라와 전혀 다른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고대사 왜곡 등을 통해 패권주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 세 나라 공히 한자 내지 유교 문화권이므로 유럽 비슷한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일각의 주장은 허탈해진다. 아무래도 한중일이 동북아의 영불독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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