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논술을 보는 다른 시각

입력
2006.09.22 23:51
0 0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예술은 인간과 현실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특정문화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이론의 가치는 실제의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 .' 달달 외우는 식의 우리 교육을 개탄하면서 늘 부러워하는 프랑스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 문제들이다. 이런 시험을 치르는 그 곳 고교생들의 머리가 우리보다 나을 리는 없다. 단지 학교 교육의 차이일 뿐이다.

논술비중을 높이는 서울대 2008학년도 입시안에 대해 일선학교와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크다. 여러 이유들을 대지만 핵심은 결국 사교육 확대에 대한 우려다. 학교에선 통합교과형 논술을 가르칠 능력도, 경험도 없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뜻 그렇겠다 싶지만 이게 바로 우리 공교육 문제의 한 단면이다.

앞서 서울대가 예시한 2008학년도 논술문제는 교수들조차 뭔 소린지 황당해 하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주제문 등의 출처를 교과서로 한정하는 등 현실적 타당성을 갖추려 애썼다는 게 대체적 평가였다. 교사들이 지레 나자빠질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키워야 한다는 교육방향은 옳지만, 가르치기가 힘들어 안 된다고 하는 건 교육자의 태도가 아니다.

● 교육목표 차원에서 접근해야

친구가 최근 고교생 아들과의 대화에서 충격을 받았노라고 했다. 아이의 교사 실력 평가기준이 학원강사였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은 거의 학원 수준"이면 최고의 찬사란다. 사실 운영자는 모르되 학원강사를 처음부터 인생목표로 삼는 이는 드물다. 생명력이 짧고, 교육적 보람을 느끼기 어렵고, 성과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반면 교사는 최고 선망의 직업이다. 일시적 급여 외에 전반적 사회·경제적 대우나 안정성 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학원이 곧 적응해 가르칠 수 있는 것을 더 우수한 자질과 여건을 갖춘 교사들이 못한다면 성의나 노력의 결여를 자인하는 셈일 뿐이다.

논술에 미처 대비할 틈도 주어지지 않은 듯 말하는 것도 잘못됐다. 논술이 도입된 지는 15년도 넘었다. 정작 도입을 유도하고도 대학별 반영비율과 문제유형 개발을 극력 억제해온 교육당국이 문제지만, 그 긴 세월 새로운 수업방식 개발과 적용을 게을리해 온 학교의 책임도 크다.

논술 사교육은 학교가 방치한 영역에서 창궐한 것이다. 논지 밖이지만 교사들이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기피하는 것도 이런 현실안주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도대체 그만한 대우를 받는 직업인치고 매일 피말리는 경쟁과 자기계발에 내몰리지 않는 이가 어디 있는가.

비판적 종합적 사고의 바탕인 철학교육의 인프라 부재를 지적하기도 한다. 이 역시 초점이 잘못됐다. 현행 윤리 교과서는 거의 압축된 철학사다. 그걸 그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건? 정답은 데카르트" 식으로 가르쳐온 관행이 잘못된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논술은 상당한 철학적 소양이 필요한 바칼로레아와는 성격이 다르다. 교과지식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응용사고력과 글쓰기능력 정도를 측정하는 수준이다. 바칼로레아 방식이 지선(至善)인가는 다른 논의지만, 어쨌든 거기까지는 갈 길이 먼 현실절충적 형태의 논술이다.

● 현실론은 공교육의 책임회피

따져보면 수능·내신이야말로 선행·반복학습, 단기 요점정리, 문제유형 예측 등이 특기인 사교육이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분야다. 이렇게 기능적으로 숙달된 시험기술자만 뽑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자는 게 논술 도입 때부터의 취지다.

이는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학교교육의 목표에 더욱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논술전형에 대한 세심한 보완과 배려 요구는 몰라도, 큰 틀 자체를 반대할 것은 아니다. 매양 학교교육 현실론을 내세우는 것은 책임회피나 현상유지의 변으로나 들리기 십상일 뿐더러, 이래서야 어느 세월에 교육의 질이 나아지기를 기대하겠는가.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