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를 구합니다.’
최근 간호사들의 미국행 러시로 지방 병ㆍ의원에서 간호사 수급대란이 벌어질 조짐이다. 간호사가 부족해 병동을 폐쇄하거나 간호조무사를 쓸 수 밖에 없어 의료사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800병상 규모의 충남의 A종합병원은 지난 7월 병동 1곳을 폐쇄했다. 4월 이후 20여명의 간호사가 사표를 내고 병원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달 들어 또 다시 1개 병동을 절반으로 축소, 도합 80개 병상을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100병상의 B병원에서는 최근 간호사들이 무더기로 수도권 병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간호사가 3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부분 업무를 간호조무사가 맡게 됨에 따라 병원측이나 환자들이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간호사 인력난은 대형병원보다는 중ㆍ소형병원, 수도권보다는 지방에서 더욱 심각하다. 서울과 수도권 병원은 광역시의 간호사를, 광역시의 병원은 지방도시 병원에서 충원하는 연쇄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근무여건이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방병원은 부족한 인력을 충원할 방법이 없다.
대한간호사협회에 따르면 현재 1만여명이 미국간호사자격시험을 준비중이다. 매년 1,400명 수준이던 미국자격시험응시자가 지난해 1,731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950여명이 시험을 치렀고 하반기 응시자 수는 상반기보다 2배 이상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중반이후 미국병원에 취업한 간호사는 373명으로 파악됐지만 개인적으로 취업한 숫자까지 합하면 더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미국간호사 자격을 취득한 간호사는 4,888명에 이른다.
문제는 인력난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4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미국 병원들과 손잡고 향후 5년간 한국간호사 1만명을 미국 병원에 취업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한 직후 그만두는 간호사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월 공단측이 마련한 두 차례의 ‘국내간호사들의 미국취업설명회’에는 전ㆍ현직 간호사 2,000여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천안 단국대학병원에서는 20여명의 간호사가 미국 간호사 자격시험을 준비중이다. 경력 15년차인 이명희(36)씨는 “미래를 위한 준비차원에서 학원에 다니며 자격시험공부를 하고있다”며 “인터넷 강의를 듣는 사람을 포함하면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간호사 시험 준비를 하는 간호대 재학생도 늘고 있다. 단국대 간호학과 4학년 김모(23)씨는 “자격증을 따면 국내병원에서 1∼2년 근무하다 미국으로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에서 간호사 등 전문직 자격 상호인정이 합의될 경우 간호사 엑소더스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간호사협회관계자는 “국내 의료기관 병상당 간호사 비율은 평균 0.21명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저 수준”이라며 “이러다가 수년 내에 파키스탄이나 필리핀 간호사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는 간호사 면허소지자가 21만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활동하지 않고 있는데 이들을 현장으로 끌어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천안=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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