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조사를 조기종결해줄 것을 미국에 요청했는지를 놓고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처음 말을 꺼낸 이태식 주미대사가 원인제공자가 됐고 청와대 송민순 안보실장은 이를 부인함으로써 사안을 외교적 혼선으로 비화시켰다. 그나마 두 직업 외교관 사이의 진실공방이 증폭되지 않고 '해석상의 차이'로 봉합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하고 있는 반기문 외교장관의 후임을 둘러싼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일부 해석은 우리를 또 한번 당혹스럽게 한다.
반 장관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향후 한두 달 내에 장관직에서 물러날 것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다. 때문에 강력한 차기 장관 후보그룹에 속해 있는 이 대사와 송 실장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래도 설마'하고 그냥 보아 넘길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이런 생각에 선뜻 동조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 대사가 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홍보하겠다는 일념에서 민감한 대목을 공개한 것도 그렇고, 진의를 알아보기도 전에 불쑥 부인부터 하고 나선 송 실장의 태도도 석연치가 않다.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무리라고 한다면 한미 정상회담 자체가 무리였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는 정상간에 합의할 것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강행된 것도 장관 경쟁 구도의 산물이라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반 장관과 송 실장이 미국과의 '2+2' 담판을 통해 얻어 냈다고 하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합의도 시간이 갈수록 초라해지는 것을 보면 의구심은 더 커진다.
더 큰 걱정은 장관 경쟁자가 이 대사와 송 실장, 두 사람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 어디서 무리수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고태성 워싱턴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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