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을 낸 지 보름 지났다. 전에는 책을 내면 득달같이 언니에게 부쳤는데 이번엔 차일피일이다. 언니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책 보내는 일이 시들해졌다. 무엇보다도 내 글을 책으로 묶는 감동이 약해져서 인 것 같다.
막 시인으로 등단했을 땐 이렇지 않았다. 문예지에서 시 한두 편을 청탁받아 보낸 뒤면 그게 활자화한 걸 보고 싶은 열망에 차 이제나저제나 하고 손꼽아 발간일을 기다렸다. 이런 일도 있었다. 처음으로 시를 여덟 편이나 싣게 된 무크지가 드디어 나왔는데, 서점에 달려가 펼쳐보니 오자가 수두룩 눈에 띄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를 어쩌지?! 안절부절못하다 볼펜을 꺼내들고 서점에 쌓인 그 무크지들에 교정을 봐 놓았다. 그래야 마땅한 줄 알았는데, 만약 그 광경을 서점 점원이 봤다면 전부 물어내라고 했을 것이다. 서점 입장에서는 내가 새 책에 낙서를 한 셈이니까.
"아, 잡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내 엄살에 문화평론을 하는 친구가 받아쳤다. "넌 잡문 쓰니? 우리는 순문(純文) 쓴다!" 시궁창을 들여다보면서도 궁창(穹蒼)의 얼굴인 그다운 반발이다. 시건 산문이건, 순문 책을 내면 감동이 새라새롭겠지.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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