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열정을 품고 청춘의 끓는 피가 샘솟는 밤/오늘밤 당신은 나를 녹여 버릴 최고의 파트너/어지러울 때까지 돌고 돌아! 라롱드!” 화려한 음악을 배경으로 모든 출연진들이 쾌락 지상주의를 합창한다. “돌고 도는 세상, 돌고 도는 인생이니까!”
풍속 역사가 에두아르드 푹스가 명저 ‘풍속의 역사’ 에서 폭로한 부르주아의 성(性) 풍습이 이 시대 뮤지컬의 어법을 빌어 활짝 핀다. 군인, 창녀, 백작, 여배우, 화가, 모델, 남편, 젊은 아내, 신사, 하녀 등 10명의 남녀가, ‘돌고 도는 춤’이라는 제목 그대로 커플을 이루며 관계를 맺어가는 풍경이다. 에이콤의 뮤지컬 ‘라롱드’는 배우들의 신체 연기를 통해 시종일관 성인용임을 밝힌다.
여타 뮤지컬에서 보기 힘든 성적 암시 등 거침 없는 연기가 시선을 붙든다. 국내 최초로 ‘19세 이하 관람 불가 뮤지컬’이라는 제한을 스스로 두었을 정도다. 접촉이나 애무 등 빈번한 성적 표현 때문만은 아니다. 화가가 숙녀의 초상화를 그리는 대목에서 모델로 분한 여배우의 전라 뒷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작품의 예술성을 높이려는 제작사측의 의도로 읽힌다.
원작은 1921년 오스트리아에서 초연된 연극 ‘라롱드’. 이 작품은 외설 혐의로 공연 정지 처분을 받았던 전과가 있다. 1950년 막스 오퓔스 감독이 ‘윤무’(輪舞)라는 제목으로 처음 영화화한 이후, 1998년 영국에서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블루 룸’이란 연극으로 성대히 부활했다. 같은 해 대학로에서 연극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제 이름을 되찾으면서 뮤지컬로 탈바꿈한 것이다.
클래식에서 탱고, 블루스, 록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곡의 선율을 만들어 적절히 변주하는 작곡가 장소영의 다양한 음악은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 상황과 부합한다. 변주해 가면서 재현되는 테마의 선율은 바로 돌고 도는 무대위의 상황이다. 도입부와 결론부, 두 번째 곡과 끝에서 두 번째 곡 등 대칭적으로 위치하는 곡들이 서로 같은 테마로 이뤄지는 등 음악적 편성과 배치에서도 작품의 형식과 들어맞는다.
연출자 박혜선 씨는 “여러 커플들을 그린 옴니버스 형식에 걸맞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며 “첫사랑 커플, 부부 등의 에피소드는 현재 한국 상황에 맞도록 삽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의 커플들을 넌지시 빗댄 대목이 이를 입증한다.
1980년대 영국에서 연극판 ‘블루 룸’을 접한 뒤, 한국화 작업을 쭉 가늠해 온 에이콤 대표 윤호진 씨는 “현대 부부들의 속생활까지 비춰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지영 이장훈 정찬우 등 출연. 11월 30일까지 웅진씽크빅 아트홀(02)575-6606.
장병욱 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